이란 다야니가(家)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 시도 과정에서 한국 측 계약 해지로 손해를 봤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우리 정부 패소가 확정됐습니다. 이는 한국정부의 ISD 관련해 처음으로 패소한 것입니다. ISD 패소의 규모는 730억원에 달합니다.
이밖에 현재 우리 정부는 외국계 사모펀드와 기업들로부터 ISD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먹튀 논란’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론스타가 우리 정부에 5조원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행동주의 PEF(사모투자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1조원에 달하는 소송을 걸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가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당한 ISD 소송은 7건에 달합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당시에도 ISD는 ‘독소조항’으로 불릴 만큼 논란이 많았던 내용입니다. 호주 정부는 미국과 FTA협정 당시에도 ISD 조항은 제외시켰다는 점에서 대응책이 필요한 현실입니다.
◆ ISD(투자자-국가 간 소송) 중남미 사례 살펴보면=ISD의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투자대상국 정부가 계약, 인가 등 사전에 정해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외국인 투자자가 손해를 볼 경우 이를 해당국 법원이 아니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ISD가 도입된 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개발형 투자를 할 때, 자국 기업 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다. 냉전시대 개발도상국가들 가운데 민족주의 정권 혹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산을 몰수하거나 추방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서구 선진국들이 고안해 낸 조항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개발도상국가들 특히 중남미 국가들이 선진국 기업들의 ISD 표적이 되곤 합니다.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2014년 기준)에 따르면 당시 중남미 국가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로부터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한 피신청국은 아르헨티나(53건)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지난 2011년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행한 긴급조치가 투자자들의 손해를 야기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어 ISD 피소송 횟수가 많은 국가는 베네수엘라입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사회주의 성향의 지도자 차베스 대통령의 집권 당시 시행한 국유화 사업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기업들이 속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진국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당시 투자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미국이 123건(24%)으로 가장 많고, 네덜란드(50건), 영국(30건), 독일(27건)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제는 ISD 소송을 당할 경우 해당 정부가 승소할 확률은 40%도 못미친다는 점입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나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종합하면 역대 ISD 소송 가운데 정부가 승소한 경우는 약 30% 불과합니다. 반면 투자자 승소는 70% 확률로 선진국 투자기업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고 있습니다.
◆ 부메랑 된 한미FTA, 노무현·이명박 과오가 현실로=ISD에 대한 논란은 지난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되기 전부터 줄곧 불거져 왔던 얘기입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참여정부는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ISD를 우려하는 일부 진영들에게 과도한 우려라고 못 박았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28일 정책브리핑을 통해 “ISD는 ‘독소조항’ 아닌 ‘공평조항’”이라며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인 ISD 소송을 제기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촉발됐습니다.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헐값으로 사들여 최대주주가 된 후 2010년 하나금융지주에 지분 매매계약을 체결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 시 헐값에 팔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금융당국과 검찰의 전방적인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애초 론스타가 매각하려는 시점(2006년) 보다 4년 이후에 엑시트가 가능해졌고, 론스타는 이를 빌미로 한국정부에 46억9000만달러(약 5조1000억원)에 달하는 ISD(투자자정부소송)를 제기했습니다.
또한 미국계 행동주의 사모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도 지난해 우리 정부를 상대로 1조원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엘리엇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국민연금을 이용해 개입한 결과 엘리엇에 약 7억7000만달러(한화 약 8942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미FTA를 추진하고 이를 완성시킨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ISD 조항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호주의 경우 미국과 FTA 협상 당시 ISD 조항을 제외시킨 전례가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 호주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설탕시장에 대한 보호조치를 인정하고 쿼터와 관세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제약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인정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의 강한 반발을 부딪쳤지만 농업부문을 양보하고서라도 ISD조항을 제외시키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우리 정부에 7건에 달하는 ISD 소송이 진행 중이고, 자금 규모만 13조원에 달합니다. 따라서 ISD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한 한미FTA 협상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여러 조항에 대해 복기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