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금강산 개별관광 확대허용을 검토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남북협력구상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여파가 거세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가 해리스 대사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표명했음에도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앞서 17일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해리스 대사는 본인의 발언이 주권국이자 동맹국인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오해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깊은 성찰을 하기 바란다”는 입장의 논평을 발표했다.
같은 날 설훈 최고위원은 당 확대간부회의에서 “해리스 대사가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진전 구상에 대해 제재 잣대를 들이댄 것에 엄중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며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심지어 청와대도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여권으로 불리는 정당들도 해리스 대사를 비판하는데 가세했다. 대안신당 김정현 대변인은 “대북정책은 주권 문제로 미 대사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해리스 대사는 외교관으로서 선을 넘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주권국 국민에게 노골적으로 모욕을 주고 있는 해리스 대사를 초치해서 엄중하게 항의해야 한다”며 “또다시 외교적 결례를 범한다면 ‘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할 것”이라고 단호한 대처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꿈쩍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18일 국내 정치권과 정부의 태도가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해리스 대사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다며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해리스 대사는 국무부 장관과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 한다”면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대사를 크게 신뢰하고 있다”는 입장을 미국의소리(VOA) 방송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이에 심재권 민주당 한반도비핵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유엔 제재의 틀 안에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해 남북관계 발전을 추구하는 것,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 일정한 제재 완화·해제가 필요할 경우 이를 우리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주권 사항”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우리의 주권상황도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냐”고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반문하며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 정세 안정과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가져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며, 발언에 더욱 진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정체된 북미 비핵화 대화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의 협력이 본격화돼야 한다”면서 “남북관계는 한반도 평화의 문제로, 우리가 더욱 주체적·주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자유한국당은 해리스 대사의 언행에 대한 범여권과 청와대의 반응이 “과도하다”며 ‘정략적 언행’이라고 비난했다.
성일종 원내대변인은 18일 서면을 통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일’ 등 남한을 향해 쏟아냈던 북한의 막말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는 이런 막말에 대해 입도 뻥긋한 적이 없다. 주적에게는 어째서 이렇게 관대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주적에게는 관대하고, 우방에는 가혹한 잣대를 이어가다가는 결국 우리 편은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