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손을 놓고도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 먼 거리에서도 환자 상태를 보고 진단할 수 있는 원격의료... 이 모든 것은 5G 시대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장면들이다. 영화 같은 일이 현실이 되면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난해 5G 시대가 열렸다고 바로 이런 모습들이 실현된 건 아니다. 고도화된 산업의 특성에 딱 맞으면서 지속가능한 신뢰성 높은 무선망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여기에 쓰이는 대표적인 기술이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다.
다만 네트워크 서비스에 차등을 두는 이 같은 기술은 망 중립성 등의 개념과 충돌하고 있다. 앞으로 이 논의를 풀어 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단독모드 5G의 실험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 네트워크 슬라이싱이란 무엇일까? 품질 신뢰성 중요한 초고도 서비스 구현의 전제조건
5G 핵심기술인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은 슬라이스의 말뜻 그대로 네트워크를 여러 개로 나누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물리적인 하나의 네트워크를 가상화해 분할해 다수의 네트워크처럼 쓸 수 있게 한다. 각 네트워크는 가상화된 망 자원과 서버 내 자원을 보장받는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통하면 동일 네트워크 하에서 각각의 서비스들이 독립 네트워크로 다른 서비스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품질을 보장할 수 있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의 5G 서비스를 쾌적하게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4G와 비교하면 변화가 뚜렷하다. 4G는 모든 서비스들이 코어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하나의 자원을 공유하기 때문에 개별 서비스간 품질을 보장할 수 없었다. 또 4G는 폰을 연결할 때에만 최적화됐지만, 5G는 다양한 단말이 연결될 수 있다.
5G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 실현되면 네트워크의 품질 신뢰성이 중요한 초고도 서비스들이 구현될 수 있다. 예컨대 개별 독립 네트워크를 통해 자율주행이나 원격운전, 원격수술 등 높은 신뢰성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들이 끊김 없이 지속될 수 있다. 또 공업과 공장, 물류와 농업, 통신과 인터넷망 등으로 네트워크가 잘개 쪼개져 각 분야에 맞는 특화된 망을 쓸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는 독립된 네트워크로 자신의 전용망을 갖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복잡하고 비싸서 이용하지 못했던 전용망을 채택하는 기업이 많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신사들은 새로운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품질 유지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
5G는 이 같은 성격에 따라 소비자보다도 기업들에게 큰 혜택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시장에는 소비자를 위한 B2C 영역에서 신규 서비스가 등장하지만, B2B 시장에 대한 파급력이 더 크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 따르면 네트워크 슬라이스의 기술 구현에는 넓은 주파수, 메시브 MIMO(massive mimo), 빔포밍, NFV 기술이 필요하다. 초저지연/고신뢰 슬라이스 구현 기술로는 UPF 오프로드, 엣지 클라우드 기술이 필요하다.
◇ 네트워크 슬라이싱 vs 망중립성...차별적 고품질이냐, 보편품질이냐?
하지만 네트워크 슬라이싱에는 복병이 하나 있다. 바로 망 중립성(network neutrality)의 개념이다.
망 중립성은 기본적으로 통신망 제공사업자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인터넷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공공자산으로 본다. 정부 허가를 통해 사업하는 공공적 성격을 띠는 망 사용자에게는 망에서 일어나는 트래픽을 통제하고, 합리적인 가격을 유지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은 그 기술 자체에 망 중립성 배치 요소가 내재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편적인 망 중립성 원칙과 달리 사업자마다 차별적인 속도와 품질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통신사가 원격의료,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일부 초고도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업자 망에만 품질을 높이면, 나머지 네트워크에는 품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커진다.
통신업계도 할 말이 있다. 자율주행 등 5G 핵심 콘텐츠를 구축하기 위해 5G 기지국을 더 많이 개설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네트워크 슬라이싱과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통신사가 구축한 5G망은 별 소용이 없게 된다. 5G 망을 이용해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가 실현될 수 있게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망 관리 권한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즉, 차별적인 서비스를 자사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사의 요구와 함께 이해관계자의 이견이 커지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2월 관리형 서비스의 세부 제공 조건과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논의할 '5G 망 중립성 연구반' 활동을 실시했다. 1기 연구반 논의를 이어 이통3사와 인터넷기업(네이버, 카카오, 왓챠), 협회(KTOA, 인터넷기업협회, 코리아 스타트업포럼), 정부산하 연구기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다양한 참석자들이 논의에 참여했다.
과기정통부는 향후 연구반 운영 결과 등을 토대로 연내 망 중립성 정책방향을 마련하고,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망 중립성 원칙 재검토' 방침을 시사한 바 있다. 과기정통부는 기존의 망 중립성 기조 유지를 전제로 하되, 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망 중립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5월 '5G 통신정책 협의회'를 열었지만, 여기서도 5G 네트워크 슬라이싱이 관리형 서비스로 인정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는 주저했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에 대한 논의는 서비스 개발 추이를 보면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과기정통부 측 입장이다.
◇ 통신3사, 순수 5G와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 구현에 박차
현재 국내 통신 3사는 3.5GHz 주파수 대역을 사용해 5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약 100MHz 대역폭을 사용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대역폭 상에서 별도 주파수 대역 할당은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28GHz 고주파수 대역에서는 통신사들이 각각 800MHz 대역폭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지금과 같이 4G LTE망과 연결한 5G망이 아닌 순수 5G망(5G SA, stand-alone) 구조에서 28GHz 대역이 상용화되는 단계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 세계최초 상용화를 위해 5G용 주파수인 3.5GHz와 28GHz를 2018년 상반기에 조기할당한 바 있다. 통신3사가 5G가 가능한 고주파대를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 5G가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더 좋다.
800MHz 대역폭을 확보하면 100MHz 대역폭 단위로 8개의 네트워크로 분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주파수 대역의 효율성이 제고되지만, 전체적인 네트워크 성능이 감소할 우려가 있으며 관리 기능의 복잡성이 높아져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진다.
통신3사는 단독모드를 일컫는 순수 5G(5G SA)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부산 지역 5G 상용망에서 삼성, 에릭슨 등의 5G 장비를 이용해 5G SA 통신을 구현했다. 다양한 제조사의 장비를 섞어 테스트한 데다 실제 운용 중인 5G 기지국을 기반으로 하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순수 5G를 성공시켜 효율성을 높였다.
LG유플러스도 5G SA 표준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비회사에서 만든 코어장비와 기지국 장비, 부가 장비 등의 연동 테스트를 실시하고 5G 서비스 시연에 성공했다. 삼성 및 에릭슨의 코어장비와 에릭슨 화웨이의 5G 기지국 장비 연동은 물론, 아리아텍과 공동 개발한 가입자 정보 관리장비의 연동까지 성공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KT도 5G 도입 초기부터 5G SA의 실현을 위해 호환 가능한 장비로 여러 번 '순수 5G' 테스트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KT는 상용화 시점부터 국내 유일하게 컵스(CUPS) 구조 코어장비를 보유하고 있어, 신규 장비 도입 없이도 순수 5G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통신3사는 올 상반기 중 세계 최초 '5G SA' 통신 상용화에 나설 예정이다. LTE 시스템을 일부 공유하는 현재의 NSA(Non-standalone) 방식과는 달리 LTE 망과 연동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접속 시간이 2배 빠르고 데이터 처리 효율도 3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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