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헬멧’ 주문한 롯데, 야구계 인식 바꿀까

‘투수 헬멧’ 주문한 롯데, 야구계 인식 바꿀까

‘투수 헬멧’ 주문한 롯데, 야구계 인식 바꿀까

기사승인 2020-05-29 08:00:00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롯데 자이언츠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 17일. 0대 0으로 맞선 3회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화 타자 정진호가 친 직선 타구가 롯데 투수 이승헌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승헌은 즉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검진 결과 다행히 미세한 두부 골절과 출혈 소견을 받았다. 경과가 좋아 이승헌은 25일 퇴원했다.

▲ 투구 속도보다 빠른 타구 속도… 위험에 노출된 투수들

프로 선수들의 일반적인 타구 속도는 배트의 반발력이 더해져 투구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김재현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최고 169km에 달하는 타구 속도를 자랑했다. 홈플레이트와 마운드의 거리가 18.44m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눈 깜빡하는 사이에 타구가 날아드는 셈이다. 웬만한 반사 신경으론 미처 타구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김원형 두산 베어스 투수 코치는 과거 현역 시절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1999년 7월11일 한화전에서 2회말 ‘홈런왕’ 장종훈의 직선타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김 코치는 왼쪽 광대뼈에 금이 가고 코뼈가 내려앉는 중상을 입었다. 

후유증은 상당했다. 당시 사고로 몸무게가 10kg 가까이 빠졌다. 근력도 잃었다. 기존의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기까지 3년 이상 걸렸다. 

김 코치는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한다. 김광삼 LG 코치는 2군 경기에서 타구에 머리를 맞은 뒤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2016년 8월 28일 퓨처스리그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직선타를 맞고 쓰러졌다. 검진 결과 두개골 골절과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일상생활조차 힘들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도 들었다. 결국 김 코치는 유니폼을 벗었다. 

▲ 상처는 씻어도 트라우마는 그대로

상처가 아물어도 극심한 트라우마로 이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다. 1990년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투수로 활약한 마크 윌슨이다. 

ESPN에 따르면 윌슨은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150km/h대 강속구를 자랑하는 유망주 투수였지만 1994년 4월4일 스프링캠프 경기에서 직선타에 입을 얻어맞은 뒤 추락했다. 근력이 떨어져 구속도 떨어졌고 날아올 공이 두려워 투구동작을 빠르게 마무리하다보니 변화구 구사, 제구에도 애를 먹었다. 결국 윌슨은 1996년 팀에서 방출된 뒤 은퇴를 결심했다. 

▲ 포수 마스크-검투사 헬멧… 투수들은 왜 보호 장비를 안 쓸까

전신을 보호구로 무장한 포수, 필요에 따라선 양쪽 귀가 다 덮인 헬멧을 쓰는 타자와 달리 대부분의 투수들은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는다. 

포수와 타자에 비해 공에 맞을 확률이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우스꽝스러운 외형, 밸런스 유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투수 보호 헬멧을 착용한 선수는 2014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소속이던 알렉스 토레스였다. 친구인 알렉스 콥이 타구에 맞는 것을 보고 투수 헬멧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들은 토레스의 헬멧을 보고 ‘우스꽝스럽다’고 조롱했다. 토레스가 빅리그를 떠난 후 메이저리그에 투수 헬멧을 쓴 선수가 사라지자 사무국은 2016년 외형이 개선된 투수 헬멧을 제작, 20명의 마이너리거를 대상으로 테스트했다. 역시 반응은 좋지 않았다. 모양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투구 밸런스 유지에 방해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손혁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투수 헬멧 도입 필요성에 대해 “고민은 해봐야 할 것 같다. 타구가 투수 정면 쪽으로 가면 놀랐던 기억이 많다”면서도 “나도 투수 출신이지만 쓸데없는 것까지 민감한 게 투수다. 헬멧을 쓰면 자신이 갖고 있는 밸런스가 흔들릴 수도 있고, 수비하거나 움직이는 동작에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제는 달라졌어요… 투수 보호 장비에 대한 인식 바꿔야

하지만 야구인들의 일반적인 고정 관념과 달리 최근 판매되는 투수 보호 장비는 외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 훨씬 뛰어나다. 타자의 헬멧처럼 단단한 재질이 아닌 모자 안에 특수한 완충 장치를 간단하게 삽입하는 방식으로 투수의 머리를 보호한다. 맷 슈마커(토론토), 다니엘 폰세 데 리온(세인트루이스) 등 일부 투수들은 이러한 제품을 사용해 경기에 나서고 있다. 

KBO 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관측된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에 따르면 최근 롯데는 이승헌 등 투수들을 위해 미국 세이퍼 스포츠 테크놀리지(SST)사의 머리 보호 장비 3개를 주문했다. SST사의 머리 보호 장비는 앞서 언급한대로 완충 장치를 삽입한 방식의 모자다. 롯데 구단은 선수가 요청한다면 이를 제공해 경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지원할 계획이다.

포수나 타자도 처음부터 헬멧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보호 장비가 일반화됐다. 그물망 설치에 부정적이었던 메이저리그는 파울타구로부터 관중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나둘씩 그물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투수들만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서는 안 된다.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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