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최근 야구팬들의 입에 수차례 오르내리는 팀이 있다. KBO리그의 원년 6개 구단 중 하나였던 삼미 슈퍼스타즈다.
1985년 해체된 팀이 지금에서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한화 이글스 때문이다. 한화는 11일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프로야구 경기에서 0대 5로 패하며 17연패 수렁에 빠졌다.
이로써 한화는 지난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대 최다 연패 2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제 1패만 더 하면 1985년 삼미의 프로야구 최다연패 기록에 도달한다.
삼미는 프로야구 최약체 팀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팀 중 하나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 1985년 해체되기까지, 1983년을 제외하곤 매해 최하위에 머물렀다.
▲ ‘프로야구의 첫 꼴찌’ 삼미
프로야구 원년, 첫 꼴찌 팀의 불명예를 쓴 팀은 삼미였다.
인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출범한 삼미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대구구장에서 열린 창단 첫 공식 경기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삼성 라이온즈를 5대 3으로 꺾고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후 전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최하위로 추락했다. 결국 4월 27일 박현식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퇴진했다. 이선덕 코치가 감독 대행으로 나서 팀을 이끌었으나 1982년 전기/후기 리그에서 승률 0.188(15승65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이는 아직까지도 프로야구 역대 최저 승률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장명부, 전설을 쓰다
삼미는 1983년 반전을 써냈다.
당시 KBO는 전력 보강과 야구 활성화의 일환으로 재일동포 선수 영입을 추진했다. 이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91승 84패를 거뒀던 장명부가 삼미 유니폼을 입게 됐다.
장명부는 계약금 등 총 2억 원에 달하는 금액에 계약을 맺었다. 당시 국내 최고 연봉 선수였던 박철순(OB)이 2400만 원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거액이었다.
장명부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그 해에만 60경기에 등판해 44경기 선발, 427.1이닝 동안 30승(28선발승) 16패 평균자책점 2.36을 기록했다. 완투와 완봉도 밥 먹듯이 했다. 완투는 36차례에 달했고 이 가운데 완투승은 26개, 완봉승은 6개였다. 그야말로 어깨가 빠져라 던졌다.
장명부의 활약에 힘입어 삼미는 1983년 52승을 올렸다. 하지만 삼미는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지 못했다. 당시 프로야구는 전기/후기 리그 1위가 한국시리즈 티켓을 가져가는 방식이었는데, 삼미는 전기/후기 리그를 통틀어 모두 2위에 머물렀다. 장명부가 선발이었던 경기에선 승률이 0.636에 달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기에선 승률이 0.429에 그친 게 문제였다.
▲ 추락하는 삼미… 그리고 해체
1984년 다시 악몽이 시작됐다.
장명부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보너스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은 데다 어깨를 지나치게 혹사한 후유증도 컸다. 시즌을 앞두고 단행한 트레이드도 실패로 돌아갔고, 장명부도 13승20패 평균자책점 3.30으로 예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삼미는 다시 최하위로 추락했다.
1985년은 더 비참했다. 삼미는 3월 30일 롯데와 치른 개막전에서 5대 1로 승리하며 시즌을 기분 좋게 출발했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무려 한 달간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면서 18연패 늪에 빠졌다.
4월30일에야 MBC를 상대로 최계훈이 4대 0 완봉승을 거두며 기나긴 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났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5월 1일 성적부진과 모기업의 재정난을 이유로 청보식품에 매각됐고, 회한으로 얼룩진 역사를 마무리했다.
▲ 한화, 프로야구 불명예 역사서 삼미 지울까
삼미가 1980년대의 최약체 팀이었다면, 한화는 2000년대 최약체 팀이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차례 최하위에 머물렀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꼴찌는 탈출했지만 각각 6위와 7위, 8위를 기록하며 하위권을 지켰다. 2018년 3위에 오르며 11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2019년 9위로 추락했다. 17연패를 기록하고 있는 현 2020시즌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최하위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한화로선 연패를 끊는 게 급선무다.
삼미가 여전히 영화와 소설 등 대중매체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프로야구 역사에 남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삼미는 프로야구 원년에 대한 향수, 장명부와 감사용 등 익히 알려진 선수들 덕분에 꼴찌를 전전하던 당시의 행보가 미화 됐지만, 한화는 사정이 다르다.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고 선수층도 얇았던 당시와 2020년의 한화가 비교대상이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모기업인 한화 그룹의 이미지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화는 12일 ‘디펜딩 챔피언’ 두산 베어스와 3연전을 치른다. 두산이 올 시즌도 2위를 질주하는 등 강력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어, 한화가 자칫 프로야구 최다 연패 기록을 새로 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위와 최하위팀의 맞대결에 어느 때보다 야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