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국·일본 수입재의 공습…궁지 몰린 철강업계

값싼 중국·일본 수입재의 공습…궁지 몰린 철강업계

‘수입재 무풍지대’, 한국 철강시장...리틀 차이나 되나

기사승인 2020-09-02 12:31:01
▲열연 제조공정 중 이동하는 슬라브의 모습(사진=포스코 제공) 
[쿠키뉴스] 임중권 기자 =한국 철강업계가 궁지에 몰렸다. 보호무역주의와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철강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국내 시장까지 중국과 일본의 값싼 수입재에 위협받으며 최악의 경영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약 3000만톤의 철강을 수출했지만, 수출 규모의 반이 넘는 약 1600만톤을 수입한 세계 5위 철강 수입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중일 동북아 3국간 교역에서는 유일한 철강 순수입국이다. 한국은 수출보다 수입이 600만톤 더 많았다.

2019년 국내 내수 철강 시장이 하반기 이후 자동차, 건설 등 주요 수요산업의 부진으로 전년비 0.9% 감소, 수출은 글로벌 교역 환경 악화로 0.2% 감소했지만, 수입은 오히려 전년비 9% 증가했다. 수입재 중에서도 절반 이상(50.6%)이 중국산으로 전년 대비 12.5%, 일본산은 0.2% 증가했다.

지난해 중국산 철강재 전체 수입 물량 8498톤 중 약 60%인 5098톤을 차지한 판재류의 경우 리롤러(전문압연업체)의 수입 비중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수입 철강재가 국내로 들어와 조선과 건설, 건재, 강관, 차, 가전 등 실수요가에게 직접 판매되는 비중보다, 재압연된 후 어디론가 다시 판매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중국산 수입재를 재압연해 판매하는 유통경로는 자칫 한국을 리틀 차이나(Little China) 즉, 중국 철강재의 우회수출 기지라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을 중국 철강재의 우회수출 기지로 의심하고 우리나라에 무역구제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에 철강재를 수출하는 데에서 나아가 지난해 중국 청산강철은 국내에 스테인리스 냉연밀 신설을 시도하기도 했다. 중국산 철강재 수입 확대는 중국 철강업체가 국내에 직접 진출하는 유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최근에는 일본산 수입도 크게 늘었다. 일본 철강기업들이 내수시장 부진을 이유로 한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산은 지난 7월 기준 열연 가격이 톤당 400달러로 중국산 보다 47달러나 낮게 판매됐다.

수입산 제품이 늘어나며 국내 시장이 잠식될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미흡한 수준이다. 앞서 설명한 주요 철강 수입국들은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 하에 수입재에 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무역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AD/CVD 규제 및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했으며, EU는 미국의 232조 도입 이후 풍선효과로 인한 역내 수입재 급증을 우려해 세이프가드를 시행했다.

중국도 국내시장 보호를 위해 자국 철강사인 청산강철의 인니법인을 통해 생산·수출되는 STS 열연 소재에 대해 지난해 8월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은 반덤핑(AD) 및 상계관세(CVD)와 같은 무역 규제 조치도 저조하고, 특정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거나 일정 가격 이하의 수입을 금지하는 세이프가드 및 최저수입가격(MIP)제도도 없다. 또 각국의 관급재 조달 시 국산재 사용을 장려하는 국산우선사용(Buy National)과 같은 제도 역시 없는 상황이다.

수입재의 국내 시장 잠식으로 한국 철강사의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것과 함께 중국산 제품의 안전성 문제도 대두된다.

고층 빌딩, 공장, 체육관 등의 기둥재와 아파트, 학교, 상가, 교량 등의 기초용 말뚝 등으로 사용되는 건설자재인 H형강은 지난 2010년 이후 중국산 H형강 덤핑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며 2015년에는 국내 시장의 30% 이상을 잠식한 바 있다.

1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던 2014년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바로 이 중국산 H형강이다.

이처럼 수입재의 국내 시장 잠식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산 제품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생산 기반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한국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의 경쟁력이 함께 약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동국제강 인천공장 전기로 현장 모습(사진=동국제강 제공)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은 제조업의 기초 소재를 공급하는 산업이다. ‘2030년 4대 제조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정부의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 달성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고품질 국산 소재를 사용해야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제조업의 기반이 되는 소재, 부품, 장비 산업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산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소부장의 국산화는 절름발이 국산화에 그칠 우려가 있다”며 “제조업 르네상스를 꿈꾸는 세계 5대 제조강국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수입 철강재 의존은 반드시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 전문가도 “철강업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산업으로 1차 금속 제조업의 정규직 취업자는 전체 20만명 중 18만명에 상용직 취업률은 약 90%”라며 “철강산업은 포항과 부산, 울산, 창원, 광양, 당진 등 우리나라 국토 곳곳에 지역 경제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가 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 지역민 고용 등에 있어서도 중요한 핵심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
임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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