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대한상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가 주최한 제주하계포럼에서 "재계 대표는 전국경제인연합(이하 전경련)"이라는 말이 나오자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한 말이다. 박 회장의 대한상의에 대한 자부심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기가 반년 남짓 남은 박 회장의 숙원은 대한상의가 명실공히 국내 제1의 경제단체로 확고히 하는 것이다.
취임 때부터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국내 제1의 경제단체는 대한상의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남달랐던 박 회장은 대한상의가 국내 맏형으로 자리를 굳건하게 할 차기 회장 적임자로 최태원 SK회장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4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연륜이 있고 기업 경영 경력도 길어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으로 오르게 되면 대한상의가 재계 맏형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박 회장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륜과 재계 상징성 모두 갖춘 적임자라는 것.
4년 전만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를 꼽으라면 전경련과 대한상의를 들었다. 국내에는 두 단체 말고도 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가 있지만, 역할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다. 그런데 암묵적으로 전경련이 경제 '제1단체', 대한상의는 전경련의 '대체재' 정도로 서열이 매겨졌다.
전경련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회장단도 삼성·현대·SK·LG 등 국내 경제를 이끄는 그룹 총수들이 즐비했다. 그래서 정부도 기업에 협조를 얻으려면 전경련을 소통창구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전경련이 갖은 힘은 막강했다.
이에 비해 대한상의는 회장단도 주로 중견·중소기업으로 이뤄진 데다 역할도 전경련보다는 낮았다. 대한상의는 전경련보다 소위 '급'이 떨어진 단체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두 단체의 위상이 달라졌다. 시작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위상은 극명히 갈렸다. 전경련은 '국정농단의 부역자'로 낙인찍히며 유명무실해져 현재는 제 기능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반면 대한상의는 전경련을 대신해 정부의 소통창구역할을 하면서 국내 재계와 경제계를 아우르는 경제단체로 급부상했고 영향력도 커졌다.
박 회장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2주 사이에 6차례나 국회를 방문하며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과 각 당 대표, 주요 상임위의장을 찾아다니며 경제계와 정치권의 소통을 끌어내는 등 이를 증명했다. 사실상 재계 권력은 전경련에서 대한상의로 이동했다고 재계 안팎은 봤다.
대한상의를 이만큼 성장시킨 데는 박 회장의 '소통' 경영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회장은 트위터 팔로워만 20만명이 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틈틈이 직원과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점에서 박 회장이 차기 대한상의 회장으로 최 회장을 점찍은 데는 '경륜'과 '재계 상징성' 외에도 '소통'의 공통분모가 작용한 것으로 재계 일각은 풀이한다.
최 회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인 '사회적 가치'를 다른 기업에 전파하며 기업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또 경제단체가 기업인들 고충을 정부에 대신 전달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대국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평소 소신으로 알려진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구성원과 행복토크 100회를 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 그의 소통경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경제 이슈와 규제 등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적임자가 최 회장이라는데 재계는 공감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상의와 SK그룹은 최 회장의 차기 회장 설에 구체적으로 검토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대한상의는 최근 입장문을 내 "차기 회장 후보는 연말 회장단에서 논의할 사항이고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했다. SK그룹도 "재계일각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현재 검토된 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하기만 한다면 대한상의로서는 가장 좋은 카드가 될 것 같다"며 "대한상의가 전경련을 제치고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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