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IMF 당시보다 힘들다고 주변에서 다 그럽니다. 이러다간 코로나19로 죽는 게 아니라 굶어서 죽을 지경이에요. 1월부터 8월까지 총 누적 적자가 3500만원입니다. 자가용 등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다 받은 상황입니다. 늪에 빠져 스스로 죽어간다는 느낌을 아시나요. 가게에 혼자 멍하니 있다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세브란스 병원 건너편에서 삼겹살집을 열고 있는 김모 씨의 말이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대학생들로 가득 찼다던 그의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손님이라곤 근처 이웃인 사진관 사장이 들러 연신 소주를 들이 키고 있을 뿐이었다. 가게 한 구석 쌓여있는 보조 테이블과 의자만이 과거 손님이 많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신촌 등지에서 고깃집을 운영해온지 10년째라는 그는 대학가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대 인근에서 장사를 할 당시는 나름 가게가 소문도 나고 장사도 잘 됐다고 한다. 하지만 2년 전 인근 재개발 이후 자본이 유입되며 땅값과 임대료가 치솟자 결국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다시 이곳에서 장사를 이어가며 자리를 잡기 시작할 찰나, 코로나19가 그를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마스크 뒤 김씨의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대학가 자영업자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대학가의 정상적인 개강이 늦어지면서 ‘상권 마비’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기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더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서울 주요 대학가는 올해 신학기 개강 특수도 놓친 데다, 1학기 내내 이어진 비대면 수업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여름방학 이후 2학기가 개강했지만, 여전히 녹록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대 앞 골목에서 마라탕 가게를 열고 있는 이모(53‧여) 씨는 이곳에서 장사를 더 이어갈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학생들이 줄을 서서 이곳을 찾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 이날 매출은 10만원에 불과했다. 이씨는 “임대료가 300만원에 이르고, 전기‧가스‧수도세 기타 고정비도 100만원 이상”이라며 “계약기간이 1년 남짓 남았는데 그전에라도 나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실제로 이대역에서 신촌 메가박스를 지나 연세대 정문으로 향하며 임대문의가 붙은 빈 상가들을 10곳 이상 목격했다. 과거 옷가게와 액세서리 판매점이 모여 있던 이대 골목은 곳곳이 비며 을씨년스러운 기분마저 들게 했다. 대학 상권은 일반 상권과 달리 유입인구가 적어 대학생의 소비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고립된 상태”라는 것이 상인들의 우려다.
이튿날 점심께 찾은 회기역 인근의 상황도 비슷했다. 경희대 정문의 한 식당에는 두세 테이블에만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직원 정모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3분의 1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평소 점심시간대면 학생들이 나와서 주로 식사를 하곤 했는데, 지금은 인근 병원이나 회사 직원들만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향후 상황에 대한 물음엔 “대학이 다시 정상적으로 개강만 한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고려대 정문에서 부대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는 임모씨도 한숨이 늘었다. 그는 “대학상권은 개강 후 번 돈으로 방학기간을 버티는데, 지금은 방학이 3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주변 상권 상황에 대해선 “식당도 힘들지만 근처 노래방, PC방 등 영업정지를 당한 사장님들을 생각하면 남일 같지 않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우리는 배달도 해보며 대안이라도 찾을 수 있지만, 이분들은 아예 답이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재난지원금보다도 저리 장기 대출 확대가 더 도움이 된다고 평했다. 추후 개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는 것이다. 정부도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2차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대출 한도를 늘리고 기준을 완화하는 등 대책을 꺼내들었다. 이날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관련 회의에서 “23일부터 한도를 기존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하고, 1·2차 중복 대출도 허용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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