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드라마 ‘악의 꽃’ 대본을 접한 이준기는 스스로 여러 질문을 건넸다. 이 작품을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아내만을 바라보는 남편, 그리고 그 이면에 숨은 슬프고 잔혹한 과거를 지닌 한 남자를 지금의 배우 이준기가 담아내기 합당한가. 물음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내가 과연 시청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자칫 배우 이준기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와 전체적인 밸런스를 붕괴시키지는 않을까. 질문과 고민은 이준기를 ‘악의 꽃’ 도현수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대본을 받고 2주 정도 계속해서 대본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 모든 것이 지금 나에게 다가온 운명과도 같은 작업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작품을 배우 인생에 있어 전환점으로 만들어 보고픈 욕심도 생겼던 것 같아요.” ‘악의 꽃’ 종영 후 서면을 통해 만난 이준기의 말이다.
운명은 운명이었다. 이준기는 ‘악의 꽃’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도현수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도현수는 사이코패스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론 사이코패스가 아닌 인물이다. 대면하는 역할과 전개에 따라 표현해야 하는 모습과 감정도 달랐다. 이준기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도현수의 변화를 섬세하고 선명하게 표현하며 작품의 개연성을 만들었다. 촬영에 돌입하기 전 품었던 질문과 고민을 작품을 통해 풀어낸 셈이다.
“감정의 완급 조절이 상당히 고민이었어요. 다히 잘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김철규 PD의 노고가 컸어요. 배우들과 함께 소통하고자 노력해주셨고, 전체적인 감정의 균형도 잘 잡아 완벽한 완급조절을 해주셨죠. 제가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 리허설을 통해 지난 장면들을 복기하고 어떠한 감정적 흐름과 고저가 설득력 있을지 배우들과 함께 고민한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문채원 씨 덕분에 조금 더 다양한 리액션을 그려볼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고마워요. 아울러 멋진 앙상블을 만들어준 배우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후반부에서 시너지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모니터를 하지 않는 대신 시청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한 것도 도움이 됐어요. 도현수가 느끼는 감정의 변주를 어떻게 하면 더 아프고 애틋하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런 감정들이 허무맹랑하지 않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썼죠.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이준기는 인터뷰서 여러 번 작품서 연기 호흡을 맞춘 배우 문채원을 언급했다. 앞서 타 드라마를 문채원과 함께 작업한 바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 들어가기 앞서 문채원과 대화를 나누며 출연을 결정했다. ‘우리가 이 작품을 잘 만들어간다면 서스펜스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를 우리만의 독특한 감정선으로 그려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긴 덕분이다.
“현장에서 배우 문채원은 섬세하고 집중력이 상당히 높아요. 그리고 본인이 그 감정을 해석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하는 배우예요. 그래서 서로 연기 합을 맞춰갈 때 제가 감정적인 부분에서 더 자극받고 도움을 받기도 했어요. 차지원(문채원)이 있었기에 도현수의 감정들도 더 절실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전 작품과 다르게 이번 작품에선 멜로 연기 합을 맞췄는데, 문채원 씨가 가진 멜로의 힘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사랑스럽다가도 애틋하고, 또 슬프도록 처연하기도 하죠. 이전부터 문채원 씨와 멜로를 해보고 싶다는 연기적인 욕심이 있었는데 감사히 이번 작품을 통해서 성취했어요. 서로를 채워주는 좋은 연기 합이었다고 생각해요.”
‘악의 꽃’을 성공적으로 완주해낸 이준기는 모든 공을 함께 한 사람들에게 돌렸다. 문채원을 비롯해 여러 제작진과의 소통 및 교감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소감은 이준기가 평소 지닌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내가 성장하고 잘되는 것보다, 내가 꿈꾸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충만함과 행복감이 중요하다는 마음. 이준기가 강조한 삶의 의미이자 가치다.
“항상 작품에 임할 때 주연으로서 가장 최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일조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이번 작품은 유독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는데, 이렇게 잘 완주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악의 꽃’은 또 한번 저에게 좋은 자양분이 됐고, 인간 이준기를 한 층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또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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