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시작인가 싶은 순간 고양이들이 소리 없이 객석을 스쳐 지나간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발걸음을 쫓다 보면 시선은 어느새 무대 위를 향한다. 고양이들의 노래와 춤이 시작되면 어느새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배경인 뒷골목 한구석으로 순간이동한다. 뮤지컬 ‘캣츠’의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고양이들의 축제 젤리클 볼을 엿보게 되는 순서다. 이후엔 그냥 즐기면 된다. 낯선 세계에서 매력적인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다.
지난달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캣츠’는 40주년 내한 공연이다. 기념할만한 숫자를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무대에서 활약한 최정상 기량의 배우들이 모였다. 배우 조아나 암필, 댄 파트리지, 브래드 리틀 등이 무대에 올라 한국 관객을 만난다.
마스크의 답답함도 잊을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섬세하게 무대 연출에 변화를 가한 것도 눈에 띈다. 1막이 시작할 때 객석에서 등장하는 배우들은 메이크업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언뜻 봐서는 일반적인 분장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배우들은 무대에 올라 자연스럽고 재빠르게 마스크를 벗고 노래한다.
‘젤리클 고양이들의 젤리클 노래’를 시작으로 개성 넘치는 고양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T.S.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은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1년에 한 번 있는 젤리클 고양이들의 축제에서 선지자 고양이인 올드 듀터러노미(브래드 리틀)가 새로운 삶을 얻을 고양이 한 마리를 선택한다는 것이 전체적인 내용이다.
웅장하거나 복잡한 서사 대신 각양각색의 개성이 넘치는 고양이들이 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매혹적이고 당당한 고양이로 존재한다. 고양이들은 유연한 몸짓으로 움직이고 흥겹게 노래한다. 무대 곳곳에서 마술처럼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춤과 노래로 풀어낸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만든 ‘캣츠’의 음악과 故 질리언 린의 안무는 고전의 명성을 보여준다. 노래와 춤, 캐릭터로 채워지는 무대는 완벽에 가깝다. 1막이 끝난 후 인터미션에도 오래도록 무대를 떠나지 않는 올드 듀터러노미에게 손을 흔드는 재미도 있다.
‘캣츠’의 명성과 매력은 달라진 바가 없지만, 전과 다른 상황이 새로운 여운을 남긴다. 펜데믹 현실을 잠시 잊고 환상적인 고양이들의 축제를 한참 즐기던 도중, 아기 고양이 제마이마(홀리 윌록)가 “새로운 날 올 거야”라는 ‘메모리’(Memory)의 가사를 또렷한 한국어로 부르는 순간 찾아오는 감동은 어느 때보다 짙다. 2막 후반부 그리자벨라(조아나 암필)가 열창하는 ‘메모리’도 마찬가지다. 행복했던 과거를 추억하며 새로운 날을 희망하는 이 노래의 메시지는 지금 이 현실에 놓여 있는 관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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