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매력적인 고양이들의 몸짓과 환상적인 노래에 흠뻑 빠져 현실을 잠시 잊다가도 “새로운 내일이 올 것”이라는 노랫말에 위안을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 현실로 돌아간다. 4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펼치고 있는 뮤지컬 ‘캣츠’의 이야기다.
지난달 9일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개막해 다음달 8일까지 상연 예정이었던 ‘캣츠’는 최근 12월6일까지 공연 기간을 연장했다. 철저한 방역 조건을 준수하며 안정적으로 공연을 펼친 덕분이다. 티켓 판매가 시작될 때마다 순식간에 주요 좌석이 매진되는 등 관객들이 큰 사랑을 쏟은 덕분이기도 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무대에 오르고 있는 배우 조아나 암필, 댄 파트리지, 브래드 리틀은 20일 오후 공연을 상연 중인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의 철저한 방역 환경 덕분에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라고 거듭 강조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한 한국 관객들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했다.
■ “자가격리 끝나던 날의 날씨를 잊을 수 없어요.”
코로나19 유행으로 전 세계 모든 공연계가 얼어붙은 상황. 뮤지컬 ‘캣츠’ 40주년 내한공연도 시작 단계부터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배우들은 입국 후 곧바로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할 수 있었다. 배우들은 공연 준비 중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자가격리를 마치는 날”을 꼽았다.
그리자벨라 역의 조아나 암필은 “자가격리를 끝내고 드디어 친구들과 만나 사람 대 사람으로 얼굴을 보고 대화하며 감격했다”라고 말했다. 격리 중 “초현실적인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 럼 텀 터거 역의 댄 파트리지는 “2주의 시간이 끝나는 날 아직 인사도 하지 못한 동료가 먼저 뛰어와 안기며 반가움을 표시했다”라고 회상했다.
상황에 맞춰 달라진 부분도 있다. 객석에서 배우들이 등장하는 동선을 최소화했고, 배우들이 메이크업이 된 마스크를 썼다가 무대 위에서 재빠르게 벗기도 한다. 인터미션 때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들과 포옹을 하던 올드 듀터러노미(브래드 리틀)는 무대 위에서 하염없이 손을 흔들 뿐이다.
하지만 이들은 바뀐 상황에 적응하며 관객들과 교류하고, 변치 않은 감동을 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브래드 리틀은 “안무 변경이나 메이크업 마스크의 착용 등을 모두 공연 일주일 전에 결정해야 했던 연출가의 노고가 대단했다”면서 “내가 등장할 때 마스크에 가려져 나의 미소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지만, 이 작품에서 전달해야 할 것들을 위해 언제나 마스크 아래에서 웃고 있다”라고 말했다.
■ “럭키, 저는 행운아예요.”
닻을 올린 ‘캣츠’는 코로나19 관련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며 순항 중이다. 배우들은 “안전을 위한 두꺼운 안내 책자를 읽으며 항상 조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행운’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한국인들이 방역에 대한 ‘철칙’을 지키는 덕분에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댄 파트리지는 “공연을 할 때 매우 신나면서도 그 감정을 온전히 누리면 안 될 것 같은 어려움을 느낀다”면서 “내가 잘 해내야만 지금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마음을 원동력 삼아 무대에 서고 있다”고 말했다. 조아나 암필은 “사실 개막 전 불안한 마음이 컸다. 과연 관객이 올지 궁금했다. 첫 무대에 서서 관객들을 보고 감동했다. 안전한 환경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캣츠’를 관람해준 관객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다”며 웃었다.
브래드 리틀은 “이 공연을 하고 있는 내내 친구들과 동료들이 내게 말하는 단어는 ‘럭키’다. 모두 저를 ‘행운아’라고 한다. 공연은 저에게 일상적인 일이지만, 현재는 일상 속에서 행운을 만나고 있단 생각이 든다”며 “주어진 기회를 절대 망치고 싶지 않아 매일을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 “메모리, 무대에 오르기 전 두려움 주는 넘버”
T.S 엘리엇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캣츠’는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4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펼쳐지는 공연도 마찬가지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과 故 질리언 린의 안무, 배우들의 특별한 연기는 여전히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댄 파트리지는 ‘캣츠’를 “관객 모두가 가져갈 것이 있는 공연”이라고 자랑했다. 남녀노소가 공감할만한 요소가 있고,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는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공연이다. 보는 순간 온전히 다른 세상에 빠질 수 있다. 열댓 명의 사람이 고양이인 척하는 그런 공연이 아니다. 훌륭한 요소가 결합해 펼쳐지는 대단한 공연이다. 공연을 본다면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자벨라의 ‘메모리’는 현시점에서 큰 특히 울림을 준다. ‘메모리’를 가창하는 조아나 암필은 “워낙 유명한 노래고 많은 아티스트가 불러 부담이 큰 노래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두려움이 있다”면서도 “그리자벨라의 여정을 생각하며 듣는다면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 기간 중 어머니와 사별했다는 브래드 리틀은 “그날도 무대에 올랐고 공연 끝에 조아나 암필이 부르는 ‘메모리’를 들으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면서 “그날의 ‘메모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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