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아래는 만산홍엽, 산 정상은 이미 초겨울
- 단풍 외 배추‧무 등 가을걷이 분주
- 만항재는 높은 도로 정상 오르면 백두대간 한눈에
- 단풍객 피해 호젓하게 산간도로 ‘드라이브 스루’
[쿠키뉴스] 정선·태백·평창·홍성 곽경근 대기자 = 강원도의 가을이 깊어간다. 온통 산과 들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던 단풍이 어느새 산정상 나무들의 잎을 떨구고 상고대가 피었다. 시속 1km의 속도로 내달리는 단풍은 설악산을 출발해 지리산 아래까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다. 주말을 앞두고 서둘러 강원도를 향했다. ‘드라이브 스루’ 스케치는 차로 오를 수 있는 고개 중 국내서 가장 높은 해발 1330m로 강원도 정선과 태백, 영월이 경계를 이루는 함백산 만항재에서 시작했다.
23일 새벽, 정선 고한읍에서 출발해 첩첩산중 굽이굽이 고갯길을 돌고 지그재그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아침 해가 뜨기 전 도착한 만항재 정상은 이미 초겨울이다. 서울서 출발하면서 강원도에 사는 지인과의 통화내용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어제 제가 설악산 일대를 돌아봤는데 온통 불바다에요” 밤잠을 설치며 올라왔는데 수십 대의 풍력발전기와 멀리 고산 준봉들만 과객을 맞는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을 돌려 산 아래 향했다.
7분 능선쯤 내려왔을까, 아침 해가 산봉우리를 넘으며 햇살이 쏟아진다. 산 위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침엽수림과 섞여 완전히 붉고 노랗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을이 완연하다. 드론을 날렸다.
뱀처럼 접었다 폈다 굽은 도로 사이로 뜨문뜨문 차들이 보이고 추색에 물든 가을빛이 따사롭다. 산 아래 어평재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내고 정선군 남면 소재 민둥산에 올랐다.
코로나 19로 어디든 마찬가지이지만 민둥산억새꽃 축제도 올해엔 취소됐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억새꽃을 보기 위해 드문드문 사람들이 발길이 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포즈로 은빛 물결 출렁이는 갈대숲 사이에서 인생샷 만들기에 한창이다.
민둥산 억새군락 역시 이미 절정기를 조금 지나 억새꽃이 많이 진 상태다. 올여름 긴 장마로 인해 예년만큼의 화려함에 못 미친다. 민둥산 정상에서 만난 최해묵(66) 씨는 “단양에서 친구와 모처럼 가을 산을 찾았다. 코로나 19로 늘 답답했는데 맑은 공기와 가을바람에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를 보니 재충전이 확실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산에서 내려와 정선의 자동차 궤적 촬영과 라이딩 명소로 소문난 문치재를 찾았다. 꼬부랑길을 재미 삼아 두세 번 오르락내리락 해 본 후 몰운대와 정선 소금강을 드라이브하며 가을을 만끽한다.
바위 사이를 비집고 살아가는 관목들의 잎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와 보는 이마다 감탄사를 자아낸다. 정선 화암면을 벗어나려는 순간 만산홍엽의 가을 산 아래 푸른색이 넓게 펼쳐졌다. 가을배추 밭이다.
대형트럭 옆에서는 작업자들이 배추를 수확해 열심히 싣고 있다. “올가을 배춧값이 엄청나게 올라 비싸다는데 농사지은 보람이 있겠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노(老) 농부는 “얼마 전까지 괜찮았다는데 지금은 또 배추가 많이 출하되어 그런지 가격이 엉망이야. 지금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인건비도 나올까 말까 해”라며 한숨을 쉰다.
괜한 질문을 드렸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데 멀리서 와서 고생하는데 “그래도 우리 마을 배추가 아주 고소하고 맛있다”라며 배추 한 다발을 전한다. 마음 넉넉한 고향 어르신이다.
정선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서 홍천과 평창의 경계를 이루는 운두령 정상에 올랐다. 첫 목적지였던 만항재만큼은 아니어도 이곳 역시 해발 1089m로 만항재 다음으로 높은 고개이다.
정상휴게소에 내리니 ‘윙윙’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사람들을 잠시 움츠러들게 할 정도로 위압한다. 예상은 했지만, 이곳 역시 산정상의 나무들 잎이 모두 떨어진 상태다. 작년 꼭 이맘때 같은 자리에서 붉게 물든 단풍을 찍었었는데 올해는 한 주일가량 일찍 진 셈이다. 자연의 섭리를 인간이 어찌 알까, 파란 하늘 아래 이어진 백두대간 풍경 감상으로 위안으로 삼았다.
마지막 산 아래 단풍에 기대를 걸었다. 홍천 내면 칡소폭포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고갯길 뱉어지자는 것을 찾았다. 해발 500m에서 600m 사이의 고갯길인 하뱃재에는 예상대로 단풍이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해지기 전 서둘러 드론을 띄우고 강원도의 가을 색을 예쁘게 담았다. 마지막에야 오늘의 베스트 사진을 건진 셈이다.
덤으로 귀경길 하늘에서 본 무밭이나 자작나무숲에서도 좋은 그림을 얻었다.
이제는 강원도에도 곧고 빠른 길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꼬불꼬불 산길을 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산정상에는 이미 단풍도 많이 졌다. 하지만 사람들을 피해 호젓하게 늦가을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려면, 답답했던 가슴에 맑고 상쾌한 공기를 불어 넣고 싶다면…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큰 고개 정상을 찾는 것도 코로나 19 시대에 걸맞은 여행법의 하나이다.
-어디로 나서볼까-
조금 늦었지만 아직도 강원도 단풍을 즐기고 싶다면 인제나 설악산 방향으로 떠나면 된다.
하지만 강원도의 아름다운 고갯길을 드라이브하고 싶다면 고원도시 태백으로 길을 나서보자. 지금은 배추 수확이 끝나 빈 들판이지만태백 매봉산 바람의 언덕을 돌아본 후 태백 시내를 지나 31번 도로를 달리다 보면 GS어평재휴게소가 나온다. 이곳 갈림길에서 421번 도로를 따라 오르면 우리나라에서 도로로는 가장 높은 함백산 만항재 정상에서 도착한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비게이션에 정선군 화암면 소재 ‘문치재’를 검색한다. 짧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꼬불꼬불 도로 중 하나인 문치재를 오르고 내리며 운전실력을 점검한 후 몰운대와 정선 소금강, 화암약수를 돌아보면 된다.
두 번째는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를 타고 서양양IC에서 빠져나와 조침령을 먼저 돌아본 후 구룡령으로 향하는 코스다.
이어 구름도 쉬어간다는 운두령을 거쳐 평창군 대관령면에 소재한 양떼목장과 진고개로도 부지런만 떨면 하루에 돌아 볼만한 드라이브 코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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