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韓 산업 대부] 구자경 "인재와 혁신" LG의 길 되다

[별이 된 韓 산업 대부] 구자경 "인재와 혁신" LG의 길 되다

故 구자경 LG 명예회장,…'사람이 곧 사업'·'잘된 은퇴도 경영혁신'
경영자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인재육성' 항상 강조

기사승인 2020-12-14 05:00:03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사진제공=LG) 

[쿠키뉴스] 윤은식 기자 ="인재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며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히 육성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인재가 되는 것입니다. 경영자가 가장 중요한 경영 자원을 소홀히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2012년 구자경 저서 "오직 이 길밖에 없다" 중에서>

구자경은 원래 교직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아버지 고(故) 구인회 창업주의 사업(지금 LG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을 도왔다. 구자경이 경영에 뛰어든 것은 아버지 구인회의 "교직을 그만두고 내 일을 도우라"는 부름을 받으면서다. 1950년 그의 나이 25세때였다.

'인화(人和)'를 중시했던 구인회는 장남인 구자경에 만큼은 엄했다.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구자경은 럭키크림 생산을 직접 담당하면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사'라는 직함에도 손수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크림을 만들고 박스에 일일이 제품을 넣어 포장해 판매현장에 들고 나가기도했다.

구자경은 십 수년 공장생활을 하면서 '공장 지킴이'로 불렸다. 당시 장남에게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주위사람들 말에 구인회는 "대장간에서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데도 수 없는 담금질로 무쇠를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를 게 없다"며 현장 수업을 고집하며 구자경을 단련시켰다.

"추운 겨울이면 판자방에서 군용 슬리핑백 속에 들어가 몸이 녹을 때까지 잠을 설치곤 했는데 이 생활이 무려 4년 가까이 계속됐지만 창업회장께서는 고생한다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으셨다. 우습게도 그때의 간절한 소망은 창업회장으로부터 칭찬 한마디 들어보는 것이었다."<"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중에서>

구 명예회장이 1.5세 경영인으로 평가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년간 부친과 함께 생산 현장을 지키며 사업을 정착 시키고 성장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해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오직 이 길 밖에 없다" 중에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강토소국 기술대국' 현판식에서 현판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사진제공=LG)
구자경은 '강토소국 기술대국'의 신념으로 기술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기술 연구는 구자경이 교직생활을 할 때부터 중요시 여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25년 동안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개발' 등 표현은 달라고 매해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지표로 내세웠다. 그는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에는 늘 적극적이었다.

구자경은 기술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레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LG인화원'이다.  

구자경은 인재는 스스로 성장하며 변신하고 육성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작은 그릇보다는 가꾸어 크게 키울 수 있는 미완의 대기(大器)'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인재를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육성하는 교육 제도를 탄탄히 해, 인재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을 더 중요시 여긴 것이다. 기업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투자로 'LG인화원'을 건립했다.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다."<1988년 'LG인화원' 개원식에서>

LG인화원은 200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12대 기업 대학에 선정돼 기업 교육과정으로서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구자경의 인재 경영은 현재 구광모 회장에게도 이어져 그룹의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최근 LG그룹 내에 인공지능(AI) 싱크탱크인 'LG AI연구원'을 설립하고 글로벌 인재 확보를 통해 글로벌 AI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1992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사진제공=LG그룹)

1995년 2월 구자경은 그룹과 고락을 함께한지 45년, 회장으로 25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국내 재계에 처음이자 마직막일 수 있는 '무고(無故) 승계'로 기록됐다. 무고(無故) 승계는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닌 시기에 세대교체를 위해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뜻한다.

구자경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아버지 구인회 창업주가 생전에 강조한 '한 번 믿으면 모두 맏겨라'는 말에 따라 은퇴한 이상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주고 어려울 때 일수록 그 결심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구자경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배턴 터치가 이루어졌을 때 '잘 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훗날 회고집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되었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

구자경은 은퇴 후 충남 천안시 성환에 위치한 연암대학교의 농장에 머물며 버섯연구와 난, 나무가꾸기 등 자연을 벗삼아 취미 활동을 하며지내다 지난해 12월 14일 영면했다.

한편 LG그룹은 14일 고 구자경 명예회장 타계 1주기를 맞아 이날 온라인을 통해 추모행사를 열 계획이다.

eunsik80@kukinews.com
윤은식 기자
eunsik80@kukinews.com
윤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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