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8시 30분 서울시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 육류 코너에서 만난 50대 여성은 돼지고기 등을 카트에 담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찬거리가 금세 떨어져 마트에 오게 됐다”면서 “살면서 10분 만에 장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계산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카트에는 두부, 콩나물 등 식재료와 휴지 등 생필품이 가득했다.
몇 분 뒤 매장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28일까지 영업시간을 9시로 단축한다”며 계산을 서둘러 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 이 마트는 오후 11시까지 영업을 이어가던 곳이다. 9시가 다가올수록 물건을 담는 손님들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져 갔다. 육류‧반찬 코너에서는 마지막까지 손님을 잡기 위한 점원들의 “마감 떨이” 외침이 울려 퍼졌다.
수도권 대형마트도 밤 9시 ‘신데렐라 영업제한’에 포함되면서 장을 보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평소 일을 마친 가족과 저녁시간 여유롭게 장을 보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마트에 들려도 생필품만 대량 구입 후 자리를 뜨는 ‘속전속결’ 장보기가 대세다.
일을 마치고 곧장 마트로 달려온 이들은 주섬주섬 장을 보기 바빴다. 마스크를 여미고 핸드폰에 적힌 메모를 따라 장을 보는 부부도 목격했다. 느지막이 마트를 찾은 손님의 대다수는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라면, 시리얼, 생수 등을 구입해 갔다. 매장 2층의 의류 등 패션 매장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초밥과 치킨, 김밥 등 즉석 조리식품 매대에는 이미 음식이 다 팔려 텅 비어있었다. 매장 직원은 “거리두기 탓인지 즉석 식품을 구입해가는 손님들은 늘어났다”면서 “내일은 더 빨리 오셔야 음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두부와 콩나물 등 채소가 있는 매대에도 텅 빈 공간이 눈에 띄었다. 계란과 우유 등 인기 품목이 있는 곳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인과 학생 등 가족 구성원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거리두기 3단계 격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마트를 들릴 때 대량 구매해 두겠다는 비축 심리까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롯데마트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6일까지 서울 내 지점에서 9시까지 단축 영업을 시행한 결과 전주 대비 매출은 1.5% 줄었지만 생필품 수요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이마트에도 채소 22%, 축산 18%, 델리 13%, 냉장·냉동·통조림 가공식품 11.3% 등 식품류 매출이 전주 대비 늘었다.
가공식품 코너에서 즉석밥을 박스로 구입하던 한 30대 남성은 “집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식료품 구매가 평소의 2배 정도는 늘어났다”면서 “거리두기가 3단계로 오르면 마트에 나오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대량 구매를 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만일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면 대형마트 수요의 상당부분은 온라인으로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생필품 매출로 버텨오는 대형마트 업계엔 직격타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온라인몰의 배송 예약은 평소보다 빠르게 마감되고 있다.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마켓컬리 주문량은 전주 대비 16% 늘었고 SSG닷컴의 13일 매출 역시 24.7%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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