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코너에서 만난 50대 주부는 “재택근무와 휴교 중인 자녀들을 위해 먹거리를 구입하러 들렀다”며 “삼시세끼 요리해주긴 힘들어 가정 간편식도 여러 종류 샀다”면서 카트를 내보였다. 유제품을 구매하고 있던 김대현(61)씨도 “바깥 외출도 줄어들다 보니 집 안에서 먹는 일만 늘어난 것 같다”고 푸념하며 요구르트를 집어보였다.
최근 대형마트는 식료품 위주로 매출이 증가했다. 이달 8일부터 14일까지 이마트의 먹거리 매출은 3주 전 대비, 과자 16%, 과일 14%, 축산 13.6%, 라면 12.7% 순으로 매출이 올랐다. 롯데마트도 11일부터 15일까지 라면 31.3%, 컵밥 12.7%, 상온밥죽 12.4%, 생수 7.7% 등 식품류 매출이 3주 전 대비 늘었다.
다만 사재기에 비교될 만큼, 높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 대형마트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먹거리는 평소 할인에 따라서도 매출 변동이 크게 나타나는 품목이다. 이에 아직까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보통 대형마트 한우 세일의 경우도 육류 매출이 30%까지 오른다.
현장 고객들의 구매 패턴 역시 사재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들의 집안 체류가 늘면서 자연스레 수요가 늘어난 것일 뿐, 필요 이상으로 물품을 구입하는 고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컵라면과 커피믹스 등을 구입한 50대 주부 권순옥 씨는 “하루 먹을 것을 삼일치 정도 늘려서 구매하는 정도”라며 사재기라는 말에 손사래부터 쳤다.
이마트 용산점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육류 코너에는 삼겹살과 등심 등 할인 상품이 빼곡했고, 생수와 통조림, 조리식품 매대도 평상시와 달라진 점은 없었다. 매장 직원들은 매대의 상품을 수시로 채워 넣었고, 라면과 즉석밥 등 재고들은 진열대 근처에 박스 째로 쌓여 있었다. 소독제와 물티슈 등 일상용품 코너에도 물건이 가득 차있긴 마찬가지였다.
용산점에서 만난 다수의 소비자들 역시 사재기란 말에 동요하지 않았다. 거주지 근처에 마트와 슈퍼, 편의점이 즐비하고, 집으로 물품을 배송 시킬 수도 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물건이 동나 구매를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1, 2차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며 성숙해진 소비 의식도 엿보였다. 농산물 코너에서 만난 김세환(50)씨는 “지난 마스크 대란 때도 봤듯이 결국 사재기가 모두의 피해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면서 “확진자가 천명이 넘어도 사재기 걱정 없는 나라라 자랑스럽다”라고 평했다. 그는 “오히려 사재기를 조장하는 일부 사람들과 언론이 문제”라고 질타했다.
대형마트 업계도 아직까지 사재기 조짐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생필품 수요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제조사와 유통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현재 온‧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식료품과 생필품 할인전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며 국내 물류와 유통체계가 더 견고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A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미 국민들이 앞선 코로나19 확산에서 국내 물류와 유통체계가 탄탄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라고 내다봤다. B 대형마트 관계자 역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이후 마트에 대한 대량의 사재기는 사라졌다고 봐도 좋다"면서 ”그만큼 성숙된 소비문화가 자리 잡은 측면도 있다“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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