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 종류에 맞춰 3cm에서 9cm 구멍크기 집지어
-폭설이나 강추위에 먹이구하기 어려우면 먹이도 공급 예정
-겨울에는 추위 쉼터, 새봄 오면 번식터 기대
[쿠키뉴스]이천·곽경근 대기자 =“코로나19로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하고, 올 겨울 유난히 추위가 심해서 작은 새들이 어떻게 겨울을 나나 걱정도 되고 해서 새집을 만들어 봤어요” 휴일인 17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동산리에 거주하는 김완기(79) 씨는 마을 어귀 작은 공원 곳곳에 인공새집을 달면서 말했다.
본래 남양주시에서 개인사업을 하던 김 씨는 5년 전 아내와 고향으로 돌아왔다. 목수 일을 했던 부친의 손재주를 닮아 나무와 기계 다루는 일에는 자신이 있던 김 씨는 귀향 후 첫 일이 창고를 개조해 공방을 꾸민 것이다.
그는 손주들을 위해 농구대도 만들고 이웃 형님 집에 주차장도 멋있게 만들어 줬다.
김 씨의 손재주와 푸근한 성품은 금방 온 동네에 소문이 났다. 간단한 집안 수리부터 마을 사람들은 고장난 물건들을 그의 집으로 들고 왔다. 덕분에 반백을 훨씬 넘겨 돌아온 고향이지만 맥가이버 김 씨는 쉽게 고향마을에 안착했다.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은 겨울철에는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도 자주 가졌지만 코로나19는 자유로웠던 시골생활마저도 숨죽이듯 집안에만 갇혀 살게 만들었다.
평소 자연에 대한 애정이 깊은 김 씨는 최근 강추위에 집 앞 나뭇가지에 몸을 바짝 움츠리고 앉아있는 작은 새들을 보면서 내 재능을 살려서 새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김 씨는 컴퓨터를 켜고 바로 ‘인공새집 만들기’ 검색에 들어갔다. 생태사진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처남에게도 자문을 구하고 다양한 형태의 새집을 살펴봤다.
외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새들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안심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한 후 제작에 들어갔다.
새의 종류에 따라 구멍과 집의 크기도 다르게 만들었다. 그는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새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외관에 나무껍질을 붙이기도 했다. 새집을 만든 후에는 새들이 앉아서 쉬거나 주변을 살피기 위한 횃대도 달고 새집 아래에는 먹이터도 만들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공원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새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급이다.
이번에 새집을 달아준 개인공원 일원도 주변에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서고 개발이 진행되면서 새들이 안심하고 살만한 집터가 자꾸 좁아들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 이번에 설치한 문 입구가 3cm에서 9cm까지의 고급빌라들은 모두 무상분양이어서 새들 사이에 소문만 나면 서로 집을 차지하려고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새집은 구멍 크기에 따라 번식하는 새의 종류도 다르다.
3cm에서는 인공새집을 가장 좋아하는 박새를 비롯해 곤줄박이, 흰눈썹황금새 등이 번식하고 6cm와 9cm에서는 소쩍새를 비롯해 원앙, 파랑새, 꾀꼬리, 솔부엉이 등 몸집이 큰새들이 번식한다.
야생조류센터 그린새 서정화(59) 대표는 “인공새집(nest box·人工巢箱)은 새들의 번식생태를 확인함과 동시에 교육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일반인들은 공원이나 숲에서 새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런 점에서 인공새집은 새들에게는 안정적인 번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사람들에게는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생태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인공새집과 먹이터 달기를 마친 농부 김완기 씨는 “집을 나름대로 개성있고 튼튼하게 만들다보니 무게가 많이 나가 나무 위에 집을 설치하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이 추위에 새들이 쉴 곳을 만들어 주었다는데 큰 보람을 느낀다. 눈이 많이 내리거나 강추위가 이어져 새들이 먹이구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먹이도 충분히 공급할 생각이다. 올 봄에는 많은 새들이 이곳에서 번식도 하고 성공적으로 새끼를 키워 나가기를 소망한다”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