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인세현 기자=소문의 그 마녀. 그 마녀의 소문은 모두 진짜일까. 초록색 마녀는 정말 마법으로 무고한 존재들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하고 사악한 존재일까. 하지만 모든 게 거짓 소문이라면 어떨까. 우리 주변을 떠도는 말의 이면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뮤지컬 ‘위키드’는 이 질문에 상상력을 극대화한 답변을 내놓는다.
뮤지컬 ‘위키드’가 돌아왔다. 지난달 16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개막한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사악한 서쪽 마녀의 생애’를 무대 위로 옮긴 작품이다. 초록색 피부의 서쪽 마녀가 알고 보면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설정이 바탕이다.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브로드웨이 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한 세 작품 중 하나다. 2013년 한국어 초연, 2016년 재연 이후 5년 만에 귀환했다.
‘위키드’는 극단적으로 성격이 다른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가 특별한 우정을 쌓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야기 배경인 오즈 사람들은 엘파바를 나쁜 마녀로, 글린다를 착한 마녀로 알지만 진실과 거리가 멀다. 대척점에 있는 듯한 두 마녀는 사실 대학 동기이고, 기숙사 방을 함께 쓴 룸메이트다. 남들과 다른 피부색으로 생긴 편견과 싸우던 외톨이 엘파바와 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글린다는 여러 일을 겪으며 서로를 인정하고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된다.
뮤지컬은 글린다가 오즈의 평화를 공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가 물에 녹아 사라졌기 때문에 또다시 오즈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공식 발표다.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는 화려한 무대에 시선을 빼앗겨, 이 아름답고 이색적인 세계의 평화를 함께 칭송하려던 찰나 무대는 글린다가 엘파바를 처음 만났을 무렵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전혀 다른 듯 보이는 두 존재가 어떤 시간을 거쳐 각자를 받아들였는지 보여준다.
암전 한 번 없이 총 54회나 바뀌는 무대는 극도로 화려하다. 여러 장치와 무대 미술, 적재적소에 쓰인 조명이 관객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대극장 뮤지컬이 익숙한 관객도 처음 보면 감탄이 나올 규모와 미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무대 위에 펼쳐진 환상의 나라는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음악도 무척 아름답다. 엘파바가 부른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는 작품 주제를 함축하는 동시에 시각·청각을 놀라게 하며 1막 대미를 장식한다. 글린다가 부르는 ‘파뷸러’(Popular)는 캐릭터의 매력을 담은 노래다. 8년 전 한국어 버전 초연 당시 엘파바와 글린다로 무대에 섰던 배우 옥주현과 정선아가 다시 뭉쳐 최고의 기량을 뿜어낸다.
‘위키드’가 부리는 특별한 마법은 무대가 끝난 뒤 시작된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무대 위,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곧 진실 앞에 도착한다. 소문이 무성한 그 마녀가 숨겨온 진짜 이야기를 들은 관객은 또 다른 물음표를 안고 객석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 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뮤지컬 넘버 멜로디만큼, 진한 여운이 남는다. ‘위키드’의 특별한 마법은 무대가 모두 끝나고 난 뒤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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