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교육의 130년 발자취 재조명
- 조선말에서 현재까지 교과서, 영상 등 150여 점 전시
- 다양한 세대의 추억과 삶을 통해 소통
- 자녀 손잡고 찾아 볼 만한 교육의 장
[쿠키뉴스] 글‧사진/ 곽경근 대기자 = “굶주림과 질병으로 수천의 생명이 희생된 엄동설한에도, 한국 정부와 유엔은 다수 학생의 학업을 계속 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다. 지금 초등학교 학령 아동의 대부분은 정규 수업을 받고 있다. …(중략) 교과서의 부족은 중대한 문제다. 그러나 어느 시골에 가도 나무 밑에 학생들이 모여 앉아서 나뭇가지에 흑판을 걸고 떨어진 책을 나누어 보고 있다. 누더기를 입은 선생이 머리 위에 있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만든 교편으로 가르칠 때, 6명 내지 8명의 학생들이 책 한 권을 나누어 보며, 암송하기 위하여 그 책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뉴욕 타임스, 1951.6.8.]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폐허 속 학교의 수업모습을 보도한 외신이다. 그 시절 “남한의 어디를 가든지, 정거장에서, 약탈당한 건물 안에서, 천막 속에서, 그리고 묘지 부근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고 종군기자는 기사를 이어간다.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도 이어진 우리 근대교육의 역사는 1895년 고종황제의 <교육입국조서>를 발표하며 시작되었다. 그때 최초의 근대 국정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이 발행되었다.
고종황제는 교육입국조서를 통해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실용을 먼저 분별하여야 한다.”며 “이제 짐은 정부에 명하여 학교를 널리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여 그대들 신민의 학식으로써 국가 중흥의 대공을 세우게 하려 한다. 왕실의 안전이 너희들 신민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또한 신민의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시작한 우리의 근대교육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왜곡, 변질되고 한국전쟁 시기 고난의 길을 지나며 성장하고 자리를 잡아 오늘 세계 10위 부국의 기틀을 잡았다.
교과서는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열과 함께 발전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교육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어왔다. 교과서에는 학교 교육을 위한 내용 외에도 시대적 상황과 미래의 희망을 담은 청사진이 담겨있다.
교과서를 통해 근대교육 13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변화하는 교육의 모습을 추억하고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송파구 송파책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교과서, 우리들의 이야기(부제: 한국 교육 130년의 나침반)」가 지난 9일 개막해 8월 31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의 교과서와 사진, 영상 등 자료 150여 점을 통해 한국교육 130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취재진을 안내한 김예주 학예연구사는 “한국 교육 흐름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면서 “이번 전시는 3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다. 조부모 세대의 어려웠던 기억들이 전시물을 통해 미래 세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좋은 교육 체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국가 위기 속에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교육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돼 왔다. 전시장은 한국 교육 흐름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1부(조선 말~대한제국 1895-1910) ‘근대 교육, 싹트다’에서는 초기 근대학교 모습과 함께 근대 국정교과서 '태서신사'와 '대한지지' 등을 만날 수 있다.
2부(일제강점기 1910-1945) ‘민족 교육의 수난’에서는 우리말은 ‘조선어독본’으로, 일본어는 ‘국어독본’으로 교육했던 모습과 실업교육에 치중했던 시대상황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최초 우리말 교재 녹음자료인 ‘조선어독본,1935’도 직접 들어 볼 수 있다.
3부(교수요목기 1945-1954)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은 광복 이후 우리말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던 교육열정을 교과서와 인터뷰 영상을 통해 소개한다.
정부 수립 후 최초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인 ‘바둑이와 철수(국어 1-1)’와 1946년 간행된 ‘국사교본’ 등을 만날 수 있다.
4부(제1~2차 교육과정 1954~1973) ‘개천에서 용 난다’에서는 ▲전쟁 직후 어려운 환경에서도 명문중고·학교 입학을 위한 치열한 입시경쟁 ▲교과서 가격 폭등 ▲아이들 성장을 방해했던 무거운 책가방 등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됐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5부(제3~4차 교육과정 1973~1987) ‘국가의 발전은 교육으로부터’는 ▲국민교육헌장과 반공·도덕 교육 강화 ▲과외 과열화 현상 등 당시 시대상을 소개한다.
6부(제5~6차 교육 과정 1987~1997) ‘21세기를 그리다’는 1교과 다 교과서 체제가 도입된 ‘말하기·듣기’ ‘읽기’ ‘쓰기’ ‘수학익힘책’ 등 교과서를 통해 교육의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강한수 장학회 회장인 강상병(1936년생, 86세)은 영상을 통해 “이 시기에는 물자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노트가 없었다.”며, “시골 장날에 큰 백로지 한 장을 사서 32장으로 접어, 이걸 실로 꿰매서 노트를 만들었다. 노트의 표지는 비료포대로 만들었다. 당일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집에 돌아와 등잔불 밑에서 꼼꼼하게 정리했는데 시험볼 때 문제에 숫자만 바꿔 나와 이 노트만 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많이 빌려갔다”고 회고했다.
빛바랜 옛 앨범을 들쳐보듯 전시장을 둘러보는 내내 새 학기를 앞두고 새 교과서를 받았을 때의 설렘이 떠오른다. 새 교과서가 흠집이라도 날까 달력 종이를 정성껏 오려서 크기에 맞게 잘라 표지를 싸고 또박또박 이름을 적었다. 새 교과서와 공책, 필통, 새 실내화를 담은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새 친구들과 만날 생각에 잠 못이루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이번 전시는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전시 해설을 무료로 공개한다. 전시 해설 녹음에는 한국사 스타강사 ‘큰별쌤’ 최태성이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박성수 송파구청장은 “교과서는 어려운 시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며,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 시대를 경험한 세대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지난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오늘의 세대들에게는 좋은 교육 체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람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 월요일은 휴관이다.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