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한국시간) 기준 메이저리그의 전체 타율은 0.237로 최근 5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역대 ‘최고 투수의 해’로 불린 1968년(0.229)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져있다.
4월 리그 타율은 0.232, 5월 리그 타율은 0.239로 처참한 수준이다. 5월에 기록이 소폭 올랐지만 여전히 ‘투고타저’ 현상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모습이다. MLB 기록을 담당하는 엘리아스 스포츠에 따르면 올해 5월 타율은 1972년(0.237) 이후 약 40년 만에 최저 타율이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타격이 가장 약한 시애틀은 팀타율이 0.208로 간신히 2할 타율을 기록 중에 있다.
반면 올 시즌 투수들은 엄청난 포스를 뽐내고 있다.
지난 4월에 개막한 메이저리그에는 노히트 노런(무안타 무실점 경기) 기록이 쏟아지듯 나왔다. 조 머스그로브(4월 9일), 카를로스 로돈(4월 9일), 존 민스(5월 5일), 웨이드 마일리(5월 7일), 스펜서 턴불(5월 6일), 코리 클루버(5월 19일) 등 6명이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개막 2개월 만에 지난해(5번) 기록을 뛰어넘었다.
또한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인 투수가 무려 20명이나 된다. 이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5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삼진도 폭증하는 중이다. 경기당 8.99개가 나오고 있다.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을 놓고 여러 가지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는 공인구였다. 최근 3년간 홈런이 계속해서 늘어나자 메이저리그 사무국 측은 올 시즌 반발 계수를 미세하게 줄인 공을 사용했다.
공인구 변화의 효과는 확실했다. 미국 매체 메이저리그 디 애슬래틱에 따르면 올해 뜬공 타구의 비거리는 317피트(약 96.6m)로 162경기를 치른 2019시즌(324피트)에 비해 줄어들었다.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올해 251피트를 기록 중인데 2019년 256피트, 2020년 274피트였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도 전년도에 비해 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유달리 판정 논란이 잦을 정도로 스트라이크 존이 확대돼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지만 투수들은 수혜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투고타저'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는 건 부정 투구다. 메이저리그는 최근 투수들이 투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이물질을 공에 묻히는 이른바 '스핏볼' 행위 등을 이용한 부정 투구를 일삼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야구에서는 공인된 '로진백'을 제외한 이물질을 바르는 행위가 금지되고 있다. 공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쳐서 공정한 경기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이물질을 사용하면 공의 회전수를 늘릴 수 있는데, 회전력이 높아지면 공의 속도와 움직임이 빨라지기 때문에 투수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물질을 사용한 부정 투구 방법은 다양하다. 땀, 진흙부터 음료수, 헤어왁스, 썬크림, 바셀린 등이 오래도록 사용됐다. 최근에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스파이더 택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부정 투구를 잡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선수가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데다 선크림 등 다른 이물질과 부정 투구용 이물질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지난 1월 LA 에인절스에서 해고된 한 관계자의 폭로가 의혹의 시작이었다. 그는 "게릿 콜(뉴욕 양키스), 저스틴 벌렌더(휴스턴), 맥스 슈어저(워싱턴), 코리 클루버(텍사스) 등 다른 정상급 투수들이 제공된 이물질을 묻힌 뒤 투구했다"고 주장해 리그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2015년 내셔널리그 MVP 출신 조쉬 도날드슨(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이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 7일 “파인타르는 차세대 스테로이드다. 끈끈한 이물질을 통해 손끝의 접착력을 높여 투수들이 멋진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며 “마이너리거 4명이 이물질 사용 혐의로 1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자 선수들의 평균 구속이 낮아졌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고 의구심을 표했다.
AL 시즌 MVP를 3차례나 수상한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도 지난 8일 "지금이라도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 지난 4년간 원했던 일이다. 이렇게 대놓고 문제될 때까지 사무국은 뭘 했나? 지금부터라도 깔끔하게 처리하기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 투구 논란이 거세지자 메이저리그도 칼을 들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지난 6일 “투수들이 이물질을 사용하는 부정 투구 의혹이 최근 MLB 이사회에서 화두에 올랐다”며 “이르면 다음 주부터 심판들은 경기 중 무작위로 공을 검사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공 확인 작업은 선발 투수를 기준으로 한 경기에서 두 차례 정도 이뤄지며,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주로 공수교대 때 시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갑작스러운 발표 직후, 공교롭게도 투수들의 투구 회전율은 감소했다.
부정 투구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콜은 이전까지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가 2561rpm에 달했다. 하지만 부정 투구 단속 발표 이후 4일 템파베이 레이스와 경기에선 2436rpm에 그쳤다. 너클 커브와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른 구종도 마찬가지로 회전수가 크게 감소했다.
LA 다저스의 트레버 바우어 역시 회전율이 급격히 줄었다. 올 시즌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가 2835rpm까지 나왔는데, 지난 7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전에서 2612rpm에 그쳤다.
부정 투구 단속이 '타고투저'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빅리그 대표 선수들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만큼 영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메이저리그는 ‘투고타저’ 현상을 줄이기 위해 부정 투구 검사 이외에도 투구판과 홈플레이트 거리 증가, 선발 투수 교체 시점부터 지명타자를 사용할 수 없는 ‘더블 후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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