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 구리시 한 댄스학원. 수강생 모두가 구슬땀을 흘리며 기초 동작을 익히는 데 여념이 없다. 전원 10대로 구성된 입시반은 몸풀기부터 동작 연습까지 숨 가쁘게 돌아간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이후 대한민국은 댄스 열풍으로 물들었다. 무용 예술과 입시 학원은 춤을 배우러온 사람들로 붐빈다. 입시 댄스 문의도 배 이상 늘었다. 지금 10대들은 댄서라는 새 꿈을 키운다.
‘스우파’로 시작된 춤바람은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옮겨 붙었다. SNS에 코레오그래피(창작 안무를 뜻하는 신조어) 영상을 올리고, 학교 동아리와 학원 등을 오가며 예비 댄서로서 포트폴리오를 쌓아가고 있다. ‘스우파’에 출연한 인기 댄서들이 교수로 재직하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는 지원자 수만 작년 대비 약 30% 이상 증가했다.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는 실용 무용 계열 중 스트릿 댄스, 코레오 등 세부 분야가 특화된 곳으로 유명하다. 학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프로그램과 연관 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올해 지원율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입시학원도 성황이다. 경기 구리시에서 실용 무용 입시 학원 아임뉴댄스를 운영하는 이종률 원장은 ‘스우파’와 스핀오프 프로그램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이하 스걸파) 이후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 원장은 “‘스우파’ 시리즈 이후 학생들이 댄서를 연예인처럼 여기게 됐다”면서 “‘스우파’로 꿈을 키우거나 용기를 얻어 새롭게 도전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원장은 또 “예술고등학교 경쟁률도 그동안은 한 자릿수 정도였지만 현재는 평균 15:1~20:1까지 치솟았다”면서 “춤을 추는 10대들이 늘어난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10대들은 왜 댄서를 꿈꿀까. 학원에서 직접 만난 10대들이 내놓은 답은 단순명료했다. 이들은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 ‘하다 보니 욕심이 나서’ 등 명쾌한 이유를 내놨다. 아이돌을 지망하다 댄서로 방향을 튼 이수진(19)양은 “노래와 춤을 연습하다 보니 춤을 더 잘 추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면서 “‘스우파’와 ‘스걸파’를 보며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양은 춤을 추며 자신감을 얻었다. 이양은 “춤을 춘다고 하니 친구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 ‘인싸’가 된 기분이었다”며 “무대에 계속 서다 보니 춤이 더 좋아졌다”며 웃었다. 김수한(18)군은 춤으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김군은 “중학교 축제에서 춤을 처음 접하고 흥미가 생겼다”면서 “무엇이든 꾸준히 하질 않아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지만, 춤을 시작한 이후 집중력이 높아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들이 말하는 춤의 매력은 다양하다. 김군에게 춤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과 내제된 생각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설명했다. 박주현(19)양과 오세빈(18)양은 춤으로 성취감을 느낀다. 박양은 “정해진 답을 찾는 수학과 달리, 춤은 추면 출수록 부족한 게 보인다”면서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더 연습하게 되는 게 춤의 매력”이라며 미소 지었다. 권나영(18)양은 춤으로 화합의 가치를 직접 경험했다. 권양은 “서로 춤을 추다 보면 각자 개성이 드러난다”면서 “서로 좋아하는 걸 느끼고 호응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스우파’로 댄서에 대한 사회 인식이 달라지며 지망생들도 힘을 얻었다. 오양은 “춤에 대해 잘 모르던 아버지가 이젠 친구들에게 ‘스우파’ 이야기를 하며 ‘내 딸도 춤을 배운다’고 자랑스러워한다”며 흡족해했다. 박양은 “직업 댄서에 회의적이었던 부모님이 ‘스우파’ 이후 달라졌다”면서 “내가 꿈꾸는 모습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양은 “이젠 당당히 ‘나는 춤으로 성공할 거고 춤만 춰도 누구보다 잘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말한다”면서 “걱정 많던 부모님도 이젠 적극적으로 내 꿈을 지지해준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수강생들에게 댄서가 돼 이루고 싶은 꿈을 묻자 소박한 답이 돌아왔다. 댄스학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다는 바람부터 좋아하는 아이돌과 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 댄서로서 자부심을 얻는 게 목표라는 등 다양했다. “꼭 최고가 아니어도 돼요. 남들이 부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묵묵히 노력해서 좋은 댄서로 성장하고 싶어요.”
콘텐츠 영역이 확장되며 댄서가 나아갈 수 있는 길도 많아졌다. 실용 무용과 교수, 기획사 트레이너, 학원 운영 등 교육 계열부터 안무가, 게임 모션 그래픽 모델, 코레오그래피 인플루언서와 유튜버, 댄스컬(춤이 주가 되는 뮤지컬) 배우까지 무궁무진하다. 이 원장은 “댄서를 불안정한 직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꾸준히 하면 일반 회사원과 소득 수준이 비슷하다”면서 “실력을 쌓는 것도 필요하지만 오래 버틸수록 많은 가능성을 만나볼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