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출판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보다 더 두려운 것이 현재 금융시장에 다가오고 있다. 바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양적 긴축이다. 연준발(發) 양적 긴축 악재가 서서히 접근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박제화된 이념이기에 더 이상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유동성 공급의 축소야 말로 (시장에) ‘탄도 미사일급’ 충격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최근 연준이 조기 양적 긴축과 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유동성 공급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양적 긴축이란 대차대조표 축소로 연준이 그동안 사들였던 미국 국채, 주택저당증권(MBS)등 금융자산의 만기가 도래한 이후에 재투자하지 않으면서 보유자산 규모를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시장에 풀었던 유동성을 줄인다는 것을 뜻한다. 시장에 유동성이 줄면 그만큼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에 자금이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 이는 자산시장 전체의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주식시장이 흔들리거나 부동산 시장이 위축될 여지가 있다.
연준의 이 같은 방향(긴축과 금리 인상)은 일반적인 경기호황기에 시행하는 것과 달리 인플레이션(물가인상)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연준은 물가 관련 문구에서 일시적(transitory)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높은 물가 상승률이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은 인정했다.
예상보다 빠른 긴축과 금리 인상으로 시장의 유동성이 기존 전망 보다 빠르게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시장은 풍부한 유동성과 재정 부양으로 인해 급격한 상승세를 이어왔다. 하지만 유동성 축소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그만큼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은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갖춘 국가는 연준발 긴축에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미국발 금리 인상은 단순한 국지적인 금융시장 뿐만 아니라 한국과 교류하고 있는 신흥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연구보고서(미국 금리인상 가능성과 한국 경제 및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서 “2018년부터 브라질, 터키,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미국 금리인상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은 통화가치 및 주식 하락 등 불안한 금융환경을 경험하고 있다”며 “미국 금리인상으로 신흥국 금융 및 실물경제가 불안해질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의 58%를 차지하는 신흥국 수출에도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가계부채와 연동된 부동산 시장도 잠재적 불안요소다. 부동산 부문 지수는 상승세를 지속해 올해 3분기 중 최고치인 100까지 높아졌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6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주택시장이 상승한 만큼 가계부채 비중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2020년 말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9.4%(전년 대비 기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주택시장 과열 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2023년 말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4000조원(GDP 대비 192%))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자산시장의 급격한 상승한 이후 조정(가격 하락)이 올 경우 시장의 부담은 크다. 지난 2012년 전국 주택 가격이 5.6% 하락했을 당시 은행의 신규 연체 금액은 전년동기 대비 37.5% 증가했다. 결국 이러한 리스크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산시장의 시급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미국 연준 보다 빨리 금리를 인상한 것도 이러한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다만 올해 3월 대통령 선거는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9.13 부동산 종합대책’을 통해 규제 방안을 마련했으나 외부 반발로 인해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전세자금 대출을 완화하는 악수를 두면서 갭투자가 활성화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국내 가계 자산의 상당수가 부동산에 쏠려 있는 만큼 강도 높은 규제는 쉽지 않다. 결국 필요한 것은 고통분담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시장이 경착륙되면서 발생하는 충격 보다 대출 규제와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 차라리 낫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