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투자자에게 명의와 자금을 빌려준 증권사들이 수천억대 손실을 떠안게 될 위기에 처했다. 공매도를 걸었던 코스닥기업 OQP(디아크)가 자회사와 합병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자회사의 주가는 2만%(200배) 가까이 비정상 폭등했다. 이에 따라 OQP 공매도 투자 증권사들은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실제 합병이 성사될 경우 공매도 투자자가 파산을 선언한다면 증권사들은 대거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국판 ‘아케고스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 긴장하고 있다. 아케고스 사태는 대형 투자은행들이 수조원대 손실을 입은 사건을 말한다.
십억대 공매도 대금이 최소 수천억 손실로…공매도 증권사들 제대로 ‘물렸다’
17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주식 거래정지된 코스닥 종목 온코퀘스트파마슈티컬(OQP)에 공매도 잔고를 보유한 국내외 증권사들은 해당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전을 준비 중이다.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공동대응 체계를 만든 상황이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고 OQP에 공매도를 걸었다가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한 것. 이로 인해 상환 예상금액이 폭증하면서 사실상 수천억대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미리 빌렸다가 실제 하락하면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예상과 다르게 주가가 오르면 공매도 투자자는 빌려서 산 것보다 더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기에 손실을 본다. 이 경우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폭등을 감당 못 하고 파산 선언(결제 불이행)할 경우 주식을 빌려준 곳(증권사)이 손해를 본다. OQP 사태도 이 같은 경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표면상 파악되는 OQP 공매도 잔고는 15억~20억 사이다. 당국은 공매도 물량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고하지 않은 공매도 잔고를 보유한 증권사가 있을 거라는 추정이다. OQP에 가장 공매도를 많이 건 곳은 외국계 증권사 모건스탠리다. 이밖에 국내 증권사 중에서도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키움증권·하나금융투자·한국투자증권·KB증권·NH투자증권 등이 엮여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결제거래(CFD)를 제공하고 있는 증권사 대부분이 이번 사건에 묶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예상 시나리오를 돌려본 그쪽(증권사)들은 결제 불이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하려는 상황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증권사 대부분이 손실을 떠안을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기묘한 합병이 만든 ‘OQP 사태’…2만% 폭등에 공매도 세력 파산 위기
증권사들의 손실 위기는 지난해 3월 OQP가 거래정지 당하면서 시작됐다. 매매 거래가 멈추면서 공매도를 걸었던 증권사도 소액주주들과 함께 물려있는 상태다. 그런데 OQP가 거래정지 중에 인적분할을 진행하면서 사태가 심각해졌다. 사업부 2개를 떼어내 인적분할한 기업은 OQP바이오와 두올물산홀딩스다. 기업이 인적분할을 진행할 경우 모회사에 대한 지분 관계가 분할한 자회사로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인적분할 전 OQP에 공매도를 걸었다가 물린 투자자는 분할된 관계사들의 주식까지 모두 매입해서 갚아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또 따로 있다. OQP에서 인적분할된 두올물산홀딩스가 비정상적으로 주가가 폭등한 자회사 두올물산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올물산은 지난해 9월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장외주식시장 K-OTC에 상장한 이후 535원이던 주가가 10만5000원으로 폭등했다. 상승률은 2만%에 달한다. 합병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두올물산의 현재 주가는 OQP 공매도 투자자가 사서 갚아야 할 가격이 된다. 이에 따라 공매도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을 선언할 경우, 고스란히 증권사가 떠안게 된다.
업계에서는 공매도 투자자들의 파산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증권사들과 공매도 투자자들의 거래가 대부분 총수익스와프(TRS) 유형으로 이뤄져서다. TRS 방식의 거래는 대체로 레버리지(돈을 빌려 자기자본의 몇 배로 투자)를 동반한다. 수수료를 내고 자신이 가진 자본보다 몇 배 많은 금액을 빌려 투자하는 것이다. 레버리지 투자를 한 상태에서 매입해야 하는 기업 주가가 폭등하는 경우 사실상 투자자가 감당 가능한 범주를 넘어선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는 거의 없을 테고.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은데, 그 외국인 투자자들이 파산을 선언하면 증권사들은 답이 없다”면서 “주가 상승추세를 반영하면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합병 후 주가가 더 오르면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상 합병 이후 주가 상승 경향이 있고, 추후 숏 스퀴즈(공매도 투자자가 주식을 한꺼번에 되사며 주가가 오르는 현상)도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손실액이 최대 수천억에 달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이번 사안은 ‘한국판 아케고스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아케고스 사건이란 TRS와 CFD로 돈을 빌려준 금융사들이 11조8000억원대의 손실을 입은 사건을 말한다. 아케고스 캐피털매니지먼트가 파생상품거래를 통해 얻은 자금으로 매입한 주식이 폭락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아케고스 캐피털이 파산하면서 금융사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됐다. 해당 금융사들 중 크레디트스위스의 손실액은 6조원으로 알려졌다.
‘이 꽉 문’ 증권사들 공동대응…금감원에 불공정거래 조사 압박·수차례 내부 민원
증권사들은 OQP와 관계사의 합병 과정에 불공정거래 요소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에 수차례 내부 민원도 제기한 상태다.
한 증권사 임원은 “금감원 조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상황에 따라 소송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일단 법률 검토도 필요하고, 개별 대응보다는 금투협 중심으로 이야기 중”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현재는 소송에 들어가진 않았다. 그 종목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이라, (당국에) 의견을 내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현재 OQP와 두올물산의 합병 추진·주가 폭등 과정과 관련된 불공정거래 혐의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주가 폭등 과정에 인위적인 시세조종(주가조작)을 한 모종의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도 고려하는 상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는 상태다. 해결이 쉽지 않게 흘러갈 거라는 것만 알아두라”며 “양측 다 대응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