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도 속 14일 국립현충원에 안장
- 의로운 전투조종사의 길 선택
- 사랑했던 조국의 하늘에서 편히 잠드시길
- 오래된 전투기 교체 시급
전투기 조종사의 아내는 늘 남편의 아침상을 정성껏 차린다. 혹이라도 저녁상을 함께 할 수 없어서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아침인사를 나눈 심정민 소령(29·공사 64기)도 그렇게 따뜻한 저녁밥을 신혼의 아내와 함께하지 못했다.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부여잡았던 심정민 소령의 영결식이 14일 심 소령의 소속부대였던 경기도 수원 소재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부대장(部隊葬)으로 엄수됐다. 서욱 국방부 장관과 박인호 공군참모총장, 고인의 유족과 동기생, 동료 조종사, 부대 장병 등이 참석해 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다.
심 소령은 지난 11일 오후 1시 43분경 F-5E 전투기를 타고 수원기지를 이륙했으나, 기체 이상으로 1분 뒤인 오후 1시 44분쯤 기지로부터 약 8㎞에 위치한 경기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소재 야산에 추락해 숨졌다.그는 항공기 진행 방향에 다수 민가가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끝까지 비상 탈출 좌석 레버를 당기지 않고 조종간을 잡은 채 순직했다.
장교 11명을 배출한 ‘병역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전투조종사로서의 자부심이 또한 남달라 “언제까지나 전투조종사로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기자는 미지근한 신앙이지만 매년 새해가 돌아오면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에 나선다. 오늘도 새벽기도에 참석해 심 소령과 그의 가족을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지상의 사물들이 급격히 다가오는 짧은 10초의 시간, 눈앞에 펼쳐지는 믿지 못할 상황을 감당하며 순간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까?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먼저 떠나야하는 죄스러움과 그도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었을 무서움과 공포, 그 가운데서도 그는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민가를 피해 야산에 추락하면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단 몇 초의 시간만 그에게 더 주어졌다면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며 기도가 이어지지 않았다. 신혼의 단꿈에 하루하루를 보냈던 젊은 아내와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평생을 그리움과 슬픔으로 숨쉬기조차 어려울 심 소령 부모를 생각하니 도무지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낡은 전투기를 최선을 다해 수리하고 안전점검 후 조종사를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지만 무사귀환이라는 마지막 임무를 뒤로 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동료를 바라보면서 전투기 관리와 정비를 맏았던 장병들 역시 무거운 마음은 매한가지다. 오래된 전투기를 잘 다룰 줄 알아야 진짜 전투기 조종사라고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곁에서 늘 목숨을 담보로 낡은 기체를 조종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수많은 전투기 조종사 가족의 심정은 또한 어떨까.
우리 공군은 F-35A 스텔스전투기와 공중급유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 등 최첨단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최소 400대의 전투기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1986년에 도입되어 아직까지 80여대나 보유하고 있는 F-5를 비롯해 노후 기종을 함께 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국산 전투기 개발을 위한 ‘KF-21 사업’이 시작되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차일피일 사업 추진이 미뤄져왔다. 지난해 KF-21 시재기가 공개됐고 향후 10년간 120대를 2032년까지 순차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이지만 그 또한 모를 일이다.대한민국 군인은 누구나 국가가 자신을 부르면 언제든 앞장서서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조국과 국민을 위해 기꺼이 헌신 할 것이다. 우리 군 조종사들의 충성심과 애국심 역시 세계 최고이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희생이 더 이상 반복 되서는 안 될 일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노후 전투기로 인한 조종사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이어질 수 있다. 그들은 가미가제 특공대가 아니다. 미국도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북한의 극초음속미사일을 우리 방어체계로 막을 수 있다는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가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다시 한번 심 소령의 숭고한 죽음과 조국의 하늘에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바친 유가족에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