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요일 아침 7시경.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제목은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 PDF 파일을 다운받았고 비밀번호를 넣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느낌이었다.
사실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을 요청한 가장 큰 이유는 호기심이었다. 하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예상과는 크게 달랐다.
총 두 건의 정보 제공이 있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제공 요청기관 자리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서처(공수처)’의 이름이 있었다.
공수처는 무려 두 차례에 걸쳐 개인 정보를 가져갔다. 이름‧주민번호‧이동전화번호‧주소‧가입일‧해지일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도 함께 적혀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8월23일 문서번호 ‘수사과-290’ △지난해 10월13일 ‘수사3부-383’ 등 두 건이었다.
허무했다. 이른바 개인정보를 ‘털리지’ 않기 위해 사이트 가입도 조심스레 했기 때문이다. 가입 시 필수로 체크해야 하는 부분과 마케팅 등을 위한 선택적 사용 동의 부분을 구분해서 하곤 했다. 은행에서 상품에 가입할 때조차 토씨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들은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 앞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공수처는 주민번호와 주소, 핸드폰 번호 등 기초 정보를 모두 털어갔다. 심지어 행정망을 활용해 주민번호로 조회를 하면 더 많은 정보와 결합할 수도 있다.
또한 이 정보를 어떻게 파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듣지 못했다.
18일 공수처 측에 문의를 남겼다. 정보(지극히 공수처와 관련이 없는 개인 정보) 수집 이유와 파기 절차‧계획 등에 대해 물었다. 공수처는 “수집된 정보의 선별·보관·파기 등 관리 만전을 기하고 있다” 등의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했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항 제4호를 이유로 “수사 중인 사안은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에 따르면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된 정보와 범죄의 예방, 수사, 공소의 제기 및 유지, 형의 집행, 교정(矯正), 보안처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그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형사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는 비공개할 수 있다.
결국 ‘개인 정보를 수집한 이유’를 공개하면 직무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지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일반인’은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결코 아니다. 수사 대상이 아니기에 정보 공개가 공수처의 직무 수행을 곤란하게 할 수도 없다. 정보를 수집한 이유와 공개하지 않는 법적 근거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무언가가 민주적인 행위가 되려면 ‘목적의 정당성과 절차의 적법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충족해야 한다. 현재 공수처는 ‘절차의 적법성’만을 주장하고 있다. 목적의 정당성은 밝혀달라는 요청엔 응하지 않고 있다. 밝히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 결국 공수처의 무차별적 통신조회는 목적의 정당성이 결여된 비민주적인 행위다.
공수처에 다시 묻는다. ‘수사 대상이 아닌 자’의 정보를 수집한 것은 ‘목적이 정당한 행위’인지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관이라면 목적의 정당성을 공개하지 않은 채 ‘관행’이라는 단어에 숨지 않아야 한다.
최기창 기자 mobydic@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