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눈총을 견디지 못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기간 중 도핑 양성 반응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피겨 신동’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스스로 무너졌다.
발리예바는 17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7개의 점프 요소 중 5개의 점프를 망치고 4위에 그쳤다.
발리예바는 첫 번째 점프인 쿼드러플(4회전) 살코부터 흔들렸다. 회전축이 흔들리면서 쿼터 랜딩(점프 회전수가 90도 수준에서 모자라는 경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과제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은 착지 실패로 넘어졌다. 이어진 세 번째 점프인 쿼드러플 토루프-트리플 플립 콤비네이션 점프도 착지에 실패했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발리예바는 가산점 10%가 붙는 후반부 첫 점프인 쿼드러플 점프를 시도하다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지막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점프에서도 착지를 제대로 못 했다.
연기를 모두 마친 발리예바는 오른손으로 허공을 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쏟았다. 점수를 확인하는 키스 앤드 크라이 존에 앉은 뒤 흐느끼기 시작했다.
발리예바는 이날 프리스케이팅에서 141.93점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세계기록인 185.29점보다 무려 40점 이상이 낮았다. 쇼트 성적을 포함해 총점 224.09점을 받은 발리예바는 안나 셰르바코바(255.95점), 알렉산드라 트루소바(251.73점·이상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사카모토 가오리(233.13점·일본)에 이어 4위에 그쳤다.
발리예바는 지난 10일 금지약물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외신 보도 전까지 ‘역사상 최고의 피겨 여자 선수’로 인정받는 슈퍼스타였다. 그는 남자 선수들의 전유물이라 불리던 쿼드러플 점프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세계무대를 장악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를 참이었다.
그러나 발리예바는 지난해 12월 제출한 도핑 샘플에서 협심증 치료제이자 흥분제 효과도 내는 금지 약물 트리메타지딘이 발견돼 선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트래비스 타이거트 미국도핑방지위원회(USADA) 위원장은 17일 CNN과 인터뷰에서 “발리예바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금지 약물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발리예바의 도핑 샘플에서 검출된 트리메타지딘의 농도가 1㎖당 2.1ng에 이른다. 다른 선수들의 샘플에서 볼 수 있는 농도의 200배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말했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대회 출전을 허락하면서 올림픽 무대에 섰지만, 주변의 손가락질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피겨 스케이팅의 전설인 김연아가 개인 SNS에 “도핑 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이 원칙에는 예외가 없어야 한다”며 일침했고, 피겨 스케이팅 해설진들은 발리예바의 연기 때 침묵함으로써 무언의 항의 메시지를 보냈다.
당초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발리예바가 메달을 획득하면 꽃다발 세리머니와 공식 메달 세리머니 등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