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스트트랙’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방송인 하리수씨가 지난달 11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를 만나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촉구하면서인데요. 그는 “패스트트랙이 이뤄져 (평등법 제정 요구 활동가들이) 단식 풀고 (인권)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00법 제정하라” “00법을 패스트트랙으로”라는 말은 뉴스에서 정치권 소식을 전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한 시민은 “놀이공원 패스트트랙? 기구를 빨리 탈 수 있는 건가요?”라고 되묻기도 했는데요. 패스트트랙, 쿠키뉴스가 설명해 드립니다.
◇ 의장 ‘직권상정’ 권한 있어도...여야 첨예한 경우 ‘몸싸움’
패스트트랙을 이해하려면 우선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법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국회의원 법안 발의 △관련 상임위원회의 심사 △법제사법위원회 법적 검토 △본회의 표결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요. 너무 오래 걸립니다. 여야가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상임위에서 계류되거나 폐기되는 경우도 많죠.
빠른 법안 통과가 필요할 경우 국회의장은 ‘직권 상정’ 권한을 사용할 수 있지만,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을 땐 국회의원끼리 몸싸움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2012년 5월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됐습니다.
◇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법
패스트트랙은 국회 선진화법 제82조2(안건의 신속 처리)의 ‘신속처리안건(신속 안건)’에 해당합니다.
어떠한 안건을 신속 처리 대상으로 지정하고자 할 땐 재적 의원 과반수가 서명한 동의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거나 상임위 소속 위원 과반수 서명 동의서를 해당 상임위원장에게 제출합니다.
의장이나 안건의 상임위원장은 곧바로 무기명 표결에 부치고, 재적의원 또는 위원회 재적 위원의 오분의 삼 이상이 찬성하면 의결됩니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 위한 두 가지 길이 있는 거죠.
본회의까지 빠르게 올 상정까지 빠르게 가야 ‘패스트트랙’ 취지에 맞을 텐데요. 신속 안건으로 지정되면 상임위 심사는 최장 180일에서 90일로, 미의결 시 자동으로 법사위에 부쳐집니다. 법사위 심사는 최장 90일. 역시 미의결 시 본회의에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본회의에 올라가서도 논의는 하는데요. 최장 60일간 안건에 대해 논의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장 재량에 따라 생략도 됩니다. 이후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법안의 국회 통과!
◇ 대표적 패스트트랙 안건 “사회적 참사 특별법”
패스트트랙은 특수한 경우에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으로 지정된 안건은 많지는 않은데요. 대표적으로 △사회적 참사 특별법(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 수정안)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선거제 개혁안(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이 있습니다.
◇ 전문가 “국회 균형 맞추기 위해 도입”
패스트트랙에는 단점도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도 빠르게 통과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전문가는 패스트트랙이 국회의 균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박지훈 변호사는 3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패스트트랙이 지정되려면 많은 의석이 필요한데 그 자체가 어려워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려면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으로 입법이 막힐 수 있는데 그걸 막는 방법의 하나가 패스트트랙”이라며 “국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는 필리버스터와 패스트트랙 둘 다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장단점이 명확한 패스트트랙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 되겠죠.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