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색 긴 다리와 동그란 눈,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새
-어렵게 우리 땅 찾았지만 번식할 곳 없어
-한국의 세렝게티, 화옹간척지는 생태보고
-‘사람과 자연’ 공생 방법 찾아야
-사진가도 새와 농부에 예의 지켜야
그냥 바라만 보아도 사랑스러운 새
“수컷 장다리물떼새가 암컷 곁에서 부리로 연신 물을 찬다. 암컷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생각으로 긴 다리에 힘을 바짝 준다.
수컷 장다리물떼새가 다시 자리를 바꾸며 부리로 물을 찬다. 암컷에게 짝짓기 할 테니 준비하라는 신호다. 암컷은 목을 일자로 쭉 뻗고 자세를 약간 낮춘다. 수컷 장다리물떼새가 등으로 올라 서기 위해 날개를 펼치더니 사뿐히 암컷 등으로 올라 자세를 낮춘다.
매우 조심스럽다. 다리가 길어 조금이라도 호흡이 맞지 않으면 실패확률이 높다. 중심을 잡기위해 매우 조심스러운 장다리물떼새 수컷, 암컷도 긴장했는지 한 치에 움직임이 없다. 수컷이 다시 한 번 날개로 조심스럽게 중심을 잡는다. 짝짓기가 이뤄지는 순간이다.”
장다리물떼새의 짝짓기 모습은 마치 서커스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이어가기위한 이들의 사랑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성공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이 성공했던 실패했던 간에 짝짓기를 마친 수컷 장다리물떼새의 매너는 만점이다. 짝짓기를 끝내고 내려오면 암컷 장다리물떼새와 눈을 맞추고 얼굴을 비벼댄다. 돈독한 사랑 표시다. 다정하게 호흡을 맞춰 산책도 함께한다. 암컷 장다리물떼새의 눈빛도 행복이 넘쳐 보인다.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화성시 화옹간척지의 한 무논에서 관찰한 장다리물떼새의 사랑나눔 장면이다.
하얀 몸통에 검은 깃 그리고 유난히 긴 붉은 다리와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사랑꾼 장다리물떼새 부부는 원앙 못지않게 금슬을 자랑한다.
검은연미복에 빨강 스타킹을 신은 것처럼 날씬한 다리의 장다리물떼새는 모델들이 런웨이 하듯 논 위를 우아하게 걷는다. 이런 장다리물떼새가 우리의 논 습지에서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 논 습지의 상징적 존재가 된 장다리물떼새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새로 많이 검색되지만 분명히 우리나라의 여름철새이다.
장다리물떼새가 우리나라에 번식을 시작한 것은 지난 1998년 천수만 간척지가 첫 사례이다. 장다리물떼새는 본래 몽골이나 중국 동북부 러시아 등지 습지나 강어귀의 키 작은 수초들 틈새에서 번식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장다리물떼새가 천수만 간척지 논의 벼를 초지로 인식하고 번식을 시작하였다. 당시 천수만 간척지에서는 논에 이앙기를 사용하여 경작하지 않고 항공기에서 볍씨를 직파하여 농사를 지었다. 또한 대형트랙터로 논갈이를 하다 보니 군데군데 물에 잠기지 않은 흙더미가 남아 있게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몇 쌍이 번식한 이후 장다리물떼새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번식하는 여름철새가 되었다.
장다리물떼새는 얕은 물가 드러난 흙더미 위에 둥지를 짓는다. 그 이유는 물이라는 천적들로부터의 방어벽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물떼새가 그렇듯 장다리물떼새 새끼들도 알을 깨고 나와 몸의 깃털이 마르면 바로 둥지를 벗어나 먹이를 찾는다. 그래서 새끼들을 바로 먹이터로 인도하여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얕은 물가에 집을 짓는 것이다. 물론 긴다리로 진화한 이유도 그러한 번식지 모습이나 먹이 취득과정에서의 행위가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집단번식하는 장다리물떼새는 천적이 나타나면 소리로 위협하고 집단비행을 통하여 천적들을 쫒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장다리물떼새의 집단번식은 호사도요들도 불러 모아 같은 번식지에서 살게 한다.
새들도 사람도 행복위해 양보 필요
경기도 화성시 화옹호 인근 간척지에서 대규모 집단번식이 확인된 것은 지난 2019년이다. 여름철새 탐조를 진행하던 한국물새네트워크 탐조팀이 집단번식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탐조팀이 몇 번의 재방문을 통해 인공적 둥지토대를 조성했다.
당시 해당 농경지를 경작하던 영농인의 양보와 농지 소유권을 갖고 있는 농어촌공사 화안사업단의 농사 중지 결정으로 약 15쌍의 번식이 한 논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결정은 우리나라 농업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 결과 열한쌍이 번식에 성공하였다. 또한 이 집단번식지에 호사도요 두 쌍이 비어있는 둥지터를 번식에 사용하였고 붉은발도요와 쇠제비갈매기도 주변에서 번식하였다.
3년이 지난 지금 화옹호 간척지는 천수만간척지의 비극이 재현되고 있다. 완성된 논에서는 더 이상 둥지를 지을 자리가 없다. 곱게 써레질을 한 논에서는 물 밖으로 한줌의 흙도 드러나지 않는다. 약간의 마른 흙이 남아 있던 논에 자리 잡은 장다리물떼새의 둥지도 한 번의 써레질로 모두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지난 5월 말 기자는 장다리물떼새의 현황을 살피고자 'Birdingtour Korea' 한종현 대표와 화옹호 간척지를 찾았다. 대부분 모내기가 끝나 논은 가지런한 벼만 가득했다. 실망이 가득한 채 돌아보다 우연히 휴경한 논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벌써 1차 번식에 성공한 장다리물떼새 새끼들은 논 사이로 천방지축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른 논에서 번식하다 둥지를 잃고 2차 번식을 시작한 장다리물떼새 부부는 물에서 겨우 몇 센티 드러난 흙더미 위에 어렵게 둥지를 짓고 1개의 알을 품고 있었다.
큰 비라도 내리면 언제든 물에 잠길 상황이다. 근처에서 삽과 장화를 구입해 둥지 토대를 15cm정도 올려주고 주변에도 5~6개의 둥지 토대도 조성했다.
이후 6월 초 다시 찾은 둥지에는 장다리물떼새 부부가 4개의 알을 교대로 품고 있었다. 혹이라도 둥지를 건드려 둥지를 포기했으면 어쩌나했던 걱정이 일순간 사라지고 마음속으로 환호했다.
지금쯤 장다리물떼새 새끼들은 장맛비도 잘 넘기고 알에서 깨어나 부모의 보살핌 속에 제법 튼실하게 자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름을 나는 장다리물떼새의 삶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한국의 논에서 장다리물떼새의 번식은 현재 농법으로는 불가능하다. 물 위로 단 한줌의 마른 흙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종현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의 논 형태는 집단농경지 형태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들을 위한 ‘소도(蘇塗)’가 필요하다. 죄인도 잡아갈 수 없는 피난처였던 삼국시대의 소도처럼 집단 농경지 중 단 한두 곳만이라도 멀게는 수만km를 날아온 새들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인간이 제공해야한다.”면서 “이러한 노력은 뜻을 가진 사람들, 의식 있는 영농인 그리고 관계당국의 정책의지가 합쳐져야 가능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 2018년 화성호와 화옹지구 간척지, 매향리 갯벌 일대의 ‘화성습지’는 국제철새 서식지로 공식 등재됐다. 화성습지의 전체 면적은 7천301ha에 달하며 과거부터 도요물떼새의 중요 서식지로 국가에 의해 조사ㆍ연구되어 온 ‘남양만’ 즉, 매향리 갯벌과 화성호ㆍ화옹지구 간척지 거의 전체다.
특히 ‘한국의 세렝게티’로 불리는 화옹호 간척지에서 관찰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만 꼽아도 겨울 철새로 초원수리, 항라머리검독수리, 물수리, 잿빛개구리매, 검독수리, 금눈쇠올빼미, 큰기러기 등이 찾아온다. 여름철에는 저어새, 호사도요, 붉은발도요, 흑꼬리도요 등 다양한 물새류가 서식하고 그 외에도 황새,흰눈썹뜸부기,긴발톱할미새 등 다양한 야생조류가 살고 있다. 화옹호는 새들에게 중간 기착지와 번식지를 제공하는 서해안의 중요한 생태 보고다.
한국농업은 증산에만 매달렸던 지난날과는 달리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전초기지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적 농업의 시작은 다른 생명들과의 공존에서 찾아야 할 때가 되기도 하였다. 둥지 하나 지을 곳 없는 오늘날의 우리 논의 모습은 새들에게는 사막과 깊은 대양일 뿐이다. 화옹호가 새들의 생명으로 가득한 땅이 되어 이곳 간척지에서 생산된 쌀부대에 장다리물떼새의 멋진 사진과 함께 “새들과 함께 행복지어요”란 문구가 인쇄되어 지길 기대해본다.
화성·글=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한종현 \취재지원:생태사진가 정기양·왕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