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공분을 산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해당 사건의 가해자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건 불법입니다. 이들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강력한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누리꾼들은 이에 황당하다는 입장입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관련해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관련 기사 댓글에서 어떤 누리꾼은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분개했습니다. 그만큼 “범죄자 신상 공개는 당연하지!”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최근 인하대학교 캠퍼스에서 한 대학생이 추락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A씨의 신상은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이번 일에 절망하고 화난 사람들은 해당 피의자의 SNS 프로필, 주거지, 전화번호, 나이 등을 올렸습니다.
신상을 공개한 이들은 이 행위가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러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헌법 307조 1항에 명시된 내용입니다. 사실을 얘기해도 내용에 명예훼손 소지가 있으면 처벌받을 수 있게 한 것을 골자로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사실을 밝혀도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던 때,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던 서지현 전 검사는 “명예훼손 피소를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국외에서도 이런 법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영국은 지난 2010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했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범죄”라고 선을 그으면서요. 독일은 ‘진실된 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대부분 처벌을 받지 않고 있고 얘기한 바에 대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되면 죄로 성립시키지 않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오랜 시간 제기돼온 문제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과 2021년에 이 법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요. ‘표현의 자유’가 우선인지, ‘인격권 보호’가 우선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