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의당 전 대표. 청소년 시절부터 정치권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다. 중학생 시절 두발복장규제와 체벌 등 학생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것에 맞서 학교를 자퇴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진학한 후에도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운동 등 청소년 인권 관련 활동을 했다. 2019년 정의당의 청년 대변인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쿠키칼럼]
나는 지방을 떠났다. 내 고향은 울산광역시. 11년 전 십 대 소녀였던 나는 고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든가 그곳 회사에 취직했다면 탈출의 명분이 있었으련만. 그러나 나는 아무런 기반도 기약도 없이 그곳을 떠났다. 떠나는 이유도 없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떠나는 이유는 있었다. 일자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삶의 자리, 존재의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 당시 나는 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해가던 와중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성 소수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도 많이 변했고 물론 지금은 내 고향도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찾을 수 있었던 동성 간 사랑의 흔적이라고는 국내 영화 중에는 ‘왕의 남자’, 그리고 가수 백지영의 ‘사랑 안해’ 뮤직비디오에 암시하듯 스쳐 지나간 두 소녀의 존재가 전부였다. 학교 친구들은 BL(boys love) 소설은 읽어도 현실의 성 소수자는 상상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게 한국을 떠나라고 했다.
결국 한국을 떠나지는 않았고, 고향만 떠났다. 내가 인지할 수 있었던 성 소수자의 존재는 인터넷 속에만 있었고 그들의 대부분이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가서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오프라인에서 다른 성 소수자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오랫동안 꿈꿨다. 그렇게 집도 뭣도 없이 서울로 왔고 고시원과 반지하 원룸을 전전하며 최저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내가 고향을 떠났던 건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향의 거리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꽂혔다. 십 년 전의 이야기이니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은 짓을 공공장소에서 하다가는 그곳을 지나가는 부모님의 지인의 지인에 의해 발견되고 소문이 돌 가능성이 상당했다. 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익명성을 갈망했다. 울산은 인구 100만의 대도시인데도 그랬다.
성 소수자인 타인과 오프라인에서 관계 맺고 싶다는 것이라든가 여자가 담배 피울 자유를 원하는 것 따위는 지나치게 사소한가. 사소할지 모르겠지만, 단지 그런 그 이유로 울산의 십 대 소녀는 서울행을 그토록 원했다.
언젠가 어느 지방의 도시에 방문했을 때, 나는 청년을 지방에 머물게 하고 싶다면 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나의 발언이 ‘지방 탈출에 성공한 기득권이 지방의 인식이 낮다고 비하한다’라며 비판했다.
서울에 사는 내가 기득권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인식에서 서울시민이 더 우월한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일자리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고, 여성과 소수자들이 대도시의 익명성에 의해서만 비로소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지역 공동체 속에서도 안전하고 자유롭다 느끼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청년을 지방에 머물게 하려는 지역 균형발전 정책은 비단 일자리뿐 아니라 여성과 소수자 청년의 ‘존재의 자리’를 만드는 것까지를 포함할 때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될 것이다(물론 여성 청년과 소수자 청년을 대상으로 고려하는 일자리 정책 역시 중요하다).
지방에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이라면, 지방에서 퀴어퍼레이드를 개최하는 것도 지역 균형발전이다. 지방에서 페미니즘 모임이 개최되는 것이나 지방에서도 소수자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지역 균형발전에 일조한다.
나처럼 탈지 방을 선택하지 않은 채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과 소수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들은 지방정부의 외면 속에서도 매우 가치 있는 공공의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높은 집값과 교통난으로 서울살이에 지쳐갈 때, 나는 다시 지방행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눴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어떤 적당한 크기의 지방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등한 다양성의 지역’을 슬로건으로 내걸어 여성과 소수자를 자유롭게 하는 온갖 정책을 선도적으로 실시한다면 어떨까.
당장 서울을 버리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며 웃었다. 너무 순진한가. 그래도 이런 상상력이 지금의 지방균형발전 정책에 보태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한 달 전, 지방의 남성 청년 당사자인 천현우 작가께서 타 언론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 지방을 떠난 여성 청년인 나는 그의 이야기에 조금 다른 결의 목소리를 덧붙이고 싶었다. 시일이 지난 후에 이 글이 발행될 예정이라 얼마나 가닿을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