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LCK 이적 시장이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10개 게임단 전원이 2023시즌 로스터를 확정지었다. 이번 이적 시장에선 팀 간 이적이 활발히 이뤄진 가운데 몇 가지 충격적인 소식들도 전해졌다. 기적처럼 ‘LoL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한 DRX가 ‘베릴’ 조건희를 제외한 전원과 재계약에 실패, 공중분해 된 것이 대표적이다.
한 프랜차이즈 스타의 FA(자유계약선수) 소식이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국내 최정상급 원거리 딜러 중 한 명인 ‘룰러’ 박재혁이 젠지e스포츠와 결별했다. 박재혁은 프로 데뷔 후 젠지에서만 7년을 몸담았다. 그는 내년부턴 중국 프로리그 징동 게이밍으로 적을 옮겨 커리어를 이어간다.
박재혁이 떠나면서 공석이 된 젠지의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 자연스레 이목이 모였다. 근거 없는 영입설 등이 피어오르기 전에, 젠지는 발 빠르게 팀의 방향성을 밝혔다. 외부 영입 없이, 젠지 챌린저스(2군) 팀에서 뛰던 ‘페이즈’ 김수환을 콜업해 2023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공언했다.
만 17세에 불과한 김수환은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로 익히 알려져 있다. 이번 챌린저스 리그 서머 시즌 1라운드 MVP로도 선정된 그는, 중국‧북미 등에서 받는 러브콜도 적잖은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장 박재혁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재목인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그를 직접 선발한 손창식 스카우터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김수환에 대한 젠지 측의 시각을 엿볼 기회를 얻었다.
아래는 손 스카우터와의 일문일답이다.
페이즈 선수의 최초 발탁 과정이 궁금합니다. 선수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는지요?
평소처럼 유망주를 찾던 중 ‘희성에몽’이라는 서포터의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듀오라면서 소개한 ‘Im not done’이라는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말하는 장면이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혹시 하는 마음에 친구 추가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인이었고, 2005년생이라는 말에 급히 솔로 랭크를 두 게임 관전하면서 이 친구를 꼭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연습생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을 결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하루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CL을 거치며 1군에서도 당장 통할 선수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페이즈는 어떤 선수인가요?
당장 통할 선수인지는 아직까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팬분들도 아시다시피 여러 장점이 부각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논외로 내부 평가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줬던 부분은 멘탈입니다. 정확히는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감정적이지 않고, 멘탈을 잘 지키는 점 그리고 나이와 경력에 비해 긴장을 잘 하지 않는 부분이 페이즈의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안 좋은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프로게이머로서 감정이 결여돼 있다는 것은 극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페이즈는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뛰어난 습득력을 기반으로 잘 성장할 거라 믿습니다.
프랜차이즈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원거리 딜러의 빈자리를 유망주로 채우게 된 것은, 페이즈 선수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정 같습니다. 선수의 어떤 점이 젠지에게 확신을 주었나요?
이러나 저러나 룰러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스카우터인 제 개인적으로 이 시기가 1년 정도 앞당겨져 다소 당황스러웠고, 냉정하게 페이즈가 준비 면에서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고, 스카우터가 아닌 과거 기자의 신분으로 돌아가 페이즈를 살펴봤습니다.
2군 선수, 코치 그리고 1군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에게 여러 평가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안 좋은 평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안 좋은 평가가 ‘모르겠다’ 정도였고, 극소수였습니다.
제가 확인한 2군 선수, 코치들은 챌린저스 리그 최고 선수로 페이즈를 손에 꼽았으며, 1군 코칭스태프나 선수들 역시 느낌이 좋은 선수라고 평했습니다. 잘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언제 잘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여담으로 저희 선수들에게도 물어봤었고, 도란(최현준)-피넛(한왕호)의 경우 페이즈를 잘 모르지만 최고 유망주라하니 걱정하지 않는다는 평이 따랐습니다. 쵸비(정지훈)는 느낌이 좋다라고 짧게 코멘트했습니다.
그 외 극찬으로 ‘챌린저스 리그에서는 더 배울 게 없는 선수’라는 한 코치님의 말이 있었고, 또 다른 코치님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승할 재목’이라고 했습니다. 두 분 모두 외부 코치님들이라 본명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선수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의 좋은 평가들 때문에 젠지가 페이즈라는 도박수를 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선 페이즈 선수의 라인전 능력이 아쉽다는 얘기도 있는 걸로 압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챌린저스 리그를 유심히 지켜보면 페이즈는 대부분 밴픽 페이즈에서 지독한 견제를 받습니다. 원거리 딜러 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 편에 속하죠.
여기에 챌린저스 리그의 특징인데, 상성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페이즈가 더 좋은 상성 혹은 밀리는 상성을 잡더라도 상대가 대부분 반반 파밍을 유도합니다. 페이즈의 플레이를 지켜본 한 해설자 분은 ‘페이즈가 잘하긴 하나보다 무조건 상대가 수비적으로 반반 유지하네’라고 평했는데요. 페이즈가 라인전 단계에서 압도적이었다고 평가하긴 어려우나 CL 기준으로 절대 약한 편이 아니고, 오히려 강한 편에 속합니다.
젠지 CL의 특징과 더불어 페이즈에 대한 대처법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텀 듀오가 경험이 다소 부족한 점이 우려를 자아내기도 하는데요. 딜라이트 선수의 강점을 말해주시고 페이즈 선수와 어떤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원래 제가 2022년 내내 지켜 본 선수는 현재 광동의 ‘준(윤세준)’ 선수였고, 이후에는 ‘카엘(김진홍)’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우선 결정권자들은 ‘딜라이트(유환중)’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고, 저 역시 딜라이트가 기량면에서 아쉬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접촉했습니다.
과거 딜라이트 선수를 ‘케리아(류민석)’ 이후 최고의 유망주라는 평가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사실 2019년이 ‘대 아카데미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케리아 이후 등장한 서포터 중 딜라이트가 가장 유망했기 때문입니다.
왜 가장 유망하다고 평가했냐면 입이 트여있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프로게이머들에게 콜 즉, 입이 열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살아온 환경과 기질에 달린 부분이라 단순 훈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딜라이트는 아직 단순 콜에 그치지만 서브 오더의 역할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젠지에 필요했습니다.
피넛은 운영 기반 플레이를 가장 선호하고, 잘 소화하는 유형입니다. 특히 수비적인 운영 부분에서 정점에 있는 선수입니다. 2022년 내내 대 캐니언전에서 진가가 발휘됐죠.
반면에 딜라이트는 젠지 아카데미 시절부터 이니시에이팅에 매우 특화돼 있었고, 당시에는 메인 오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당장 젠지 퀄리티에 부합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그동안 꾸준히 발전했기 때문에 도란-피넛에게 부여되는 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 좋은 시너지를 발휘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즈와의 궁합은 여전히 물음표입니다. 그러나 도란과 피넛의 보조자 역할, 그리고 공격 첨병 역할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딜라이트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