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결승전이 열린 지난 11월 5일. 우승팀이 가려지는 5세트, T1의 넥서스가 허물어졌다. DRX 선수단이 손을 번쩍 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동시에 ‘케리아’ 류민석(T1)은 얼굴을 감싸 쥐고 무너졌다. 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로부터 약 2개월이 지난 후, 22일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류민석의 얼굴은 어느 때처럼 밝았다. 테가 얇은 동그란 안경에 하얀 터틀넥 차림의 그는 이날 유독 빛이 났다.
류민석은 이날 열린 LCK 어워드에서 상을 가득 쓸어 담았다. ‘올해의 서포터상’을 거머쥐는 영예도 안았다. 비록 롤드컵 최정상에 서진 못했지만, 그는 자신이 리그 최고라는 걸 알고 있다.
류민석은 “예상한 상은 몇 개 있었는데, ‘어시스트 킹’이나 이런 상은 예상을 못 해서 되게 감사했고, 올 한 해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고 기뻐했다.
T1과 류민석은 올 한 해 유독 바빴다. 스프링과 서머, 국제대회에서 모두 결승 무대를 밟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꿀맛 같은 휴식기를 보냈지만, 류민석은 롤드컵 결승전의 패배로 인해 한동안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휴가 때도 롤을 하거나 집 안에 거의 있는 편인데, 자고 일어나면 컴퓨터가 바로 앞에 있어서 자꾸 결승전 생각이 나더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부산과 일본을 다녀왔다. 방에서 벗어나서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했다.”
류민석은 올해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전했다.
“결승전을 되게 많이 가긴 했지만 우승을 한 번 밖에 못 해서 굉장히 아쉽다. 스프링 때는 과정이 너무 좋아서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MSI와 서머 때는 과정이 좋지 않아서 우승을 하긴 힘들 거라고 봤다. 다만 롤드컵은 과정이 좋아서 스프링 때보다도 훨씬 더 자신에 차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우승을 놓쳐서 개인적으로는 깊게 여운이 남았던 것 같다.”
“누구나 요구하는 플레이가 있다. 그런데 서머 때는 서로 해야 될 말도 안 하면서 시즌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신뢰가 점점 떨어졌다. 개인 기량 하락까지 겹쳐 과정이 좋지 않았다. 코치직을 하면서 그걸 전부 지켜보신 ‘벵기’ 감독님이 부임하자마자 그것부터 해결하려고 하셨다.”
류민석은 T1의 분기점을 롤드컵 직전 열린 ‘워크숍’으로 꼽았다. 전신인 SK 텔레콤 T1 시절을 함께 한 옛 선수들, 코칭 스태프가 한 데 모여 마음을 나눴다. “SKT에 워크숍을 할 수 있는 엄청 큰 건물이 있다. 예전 SKT 선수들과 함께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 거기서 불신과 질서, 규율 등 팀에 관련한 얘기들도 나눴다. 그게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류민석은 롤드컵 결승전 패배가 확정된 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이어진 인터뷰에선 “인생에 회의감이 느껴진다”고 말해 우려를 자아냈다.
“자신감이 굉장히 차 있는 상태였고, 과정이 너무 좋아서 여운이 많이 남았다. 3연속 준우승을 하지 않았나. 그 마지막 무대였다. 롤드컵 결승이라는 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무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기량도 좋았다고 생각해서 아쉬웠다.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는데 벅차 올랐다.”
“정말 열심히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당시엔 우리가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도 우승을 못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3년 동안 프로 커리어를 이어왔다. 우승이 1번인데 준우승은 5번이다. ‘나는 우승을 못 하는 사람인가’, ‘팀에 민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잇따랐다. 너무 힘들어서 반년이나 1년 정도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내 자신의 개인 SNS를 통해 팬들을 안심시켰지만, 류민석은 한동안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그러나 관성처럼 흐르는 시간, 팬들의 존재가 그를 늪에서 건져줬다.
류민석은 “시간이 약이라는 게 맞더라. 아직 프로 생활을 3년 밖에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어진 시간이 길다. 당장 상대 팀이었던 (김)혁규 형만 봐도 10년 동안 해서 드디어 결실을 맺었지 않나.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아직 3년 차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우승을 원하고, 나의 우승을 바라는 팬 분들이 굉장히 많다. 우승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책임감 없이 휴식을 해 버리면 나도 팬 분들도 많이 실망할 것 같았다.”
류민석은 2023시즌 다시 뛴다. T1은 내년에도 우승 후보다. 리그 내에서 유일하게 로스터 변화가 없다. 팀 전력의 핵심, ‘페이커’ 이상혁이 3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상혁이 형이 T1에 계속 남을 거라고 생각해서 나 역시 시즌 중간에 재계약을 한 거다. 그런데 FA가 되고 나서 시간이 점점 흐르는데도 빨리 결정이 안 나는 거다. 걱정을 조금 했었는데 잘 계약이 마무리됐다. 무려 3년이나 우리와, 아니 T1과 함께 하게 됐다. 우리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되게 기뻤다.”
류민석이 경계하는 팀은 담원 기아다. ‘칸나’ 김창동과 ‘데프트’ 김혁규가 새로 합류했다. “로스터 구성 같은 걸 보면 개인적으론 담원이 제일 까다로운 상태라고 느껴진다. 칸나 선수는 팀적인 플레이에 굉장히 도움을 많이 주는 선수다. 캐니언-쇼메이커 선수는 담원의 본체라 말할 것도 없다. 켈린 선수가 메카닉적으로 뛰어난 선수인데, 데프트가 서포터의 운영을 잘 가르쳐주니 장점이 더욱 극대화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류민석의 내년 목표는 국제대회 우승이다.
“준우승을 세 번이나 해서 아쉬웠지만, 본래 2022년 목표는 우승을 한 번이라도 하는 거였다. 결과적으로 목표는 달성했다. 내년에는 월즈 우승이나 MSI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걱정 많이 하셨을 텐데 더욱 더 성장하는 케리아가 되어서 내년엔 멋진 커리어를 이어가도록 하겠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