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쇼핑몰을 자주 사용하는 직장인 김모(30)씨. 고액 상품일 경우, 종종 6개월 무이자 할부를 사용해 카드값 부담을 덜어왔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결제창에서 ‘6개월 무이자 할부’ 선택란이 사라졌습니다. 무이자할부 기간은 최대 3개월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망설이던 김씨는 물건을 구매하지 못한 채 결제창을 나와야 했습니다.
카드사들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 기간이 대부분 2~3개월로 단축됐습니다. 5~6개월 이상의 무이자 할부 서비스는 이제 제한적으로만 제공되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이달 13개 업종 가운데 10개(온라인 쇼핑, 손해보험, 의류·아웃도어, 약국, 면세점, 항공사, 세금, 일반병원, 차량정비, 호텔)에 대한 무이자 할부 서비스 기간을 2~3개월로 단축했습니다. 오직 학원, 대학 등록금, 종합병원 3개 업종에 대해서만 무이자 할부를 5~6개월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신 10~12개월 ‘슬림 할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슬림 할부는 다이어트 할부, 부분 무이자 할부로도 불리는 서비스로, 전체 할부 기간 중 몇 달만 이자가 면제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6개월 부분 무이자 할부를 사용하면, 1~3회차 할부 수수료는 소비자가 부담하고 4~6회차는 카드사가 부담하는 형식이죠.
KB국민카드는 쇼핑·유통, 여행·레저, 가전, 손해보험·PG 영역에서 무이자 할부를 2~3개월로 줄이고 대신 6·10·12개월 슬림할부를 선택지에 넣었습니다. 현대카드와 삼성카드 역시 무이자 할부 기간을 최대 3개월로 단축시키고 대학등록금, 병원, 의류, 차량정비 등 일부 업종에서만 슬림할부를 추가 제공한다고 공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카드사들은 장기 무이자 할부 서비스 경쟁을 벌였습니다. 온라인결제를 비롯해 백화점, 대형마트, 여행, 4대 보험 등에 최대 12개월까지 제공되던 무이자 할부가 불과 1년도 안 돼 자취를 감춘 겁니다.
왜 갑자기 6개월 무이자 할부가 사라진 걸까요. 한 업계 관계자는 “간단하게 말하면 고금리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카드사들은 은행과 달리 고객들로부터 돈을 받는 수신 기능이 없습니다. 때문에 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 발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기준금리가 상승하면서 여전채 금리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돈을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커지는데 설상가상으로 카드사 할부 대금 잔액도 늘고 있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3년간 카드사 할부 및 리볼빙 잔액 현황’에 따르면 신한, 삼성, 현대, KB국민, 롯데, 우리, 하나, 비씨 등 8개 카드사의 할부대금 잔액(유이자+무이자)은 2019년말 30조1880억원, 2020년말 32조9491억원, 2021년말 37조7421억원, 지난해 9월말 41조4845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무이자 할부는 카드사 입장에서는 상당히 비용 부담이 되는 서비스입니다. 일시불과 달리 할부는 결제금액을 분할 납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수료가 붙습니다. 무이자 할부는 고객이 낼 수수료를 카드사가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납부할 잔액이 많을수록 카드사로써는 압박이 될 수 밖에요.
다행히 여전채 금리는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한때 6%대까지 치솟았던 여전채 금리는 금융당국이 채권안전펀드를 가동해 여전채를 매입하는 등 채권시장 안정화 노력에 힘입어 소폭 하락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여전채(AA+) 3년물 금리는 4.273%입니다. 이달 초(2일, 4.438%)와 비교해 0.165%p 떨어졌습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세계적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 부도설까지 확산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도 있다는 낙관적 예측도 흘러나옵니다.
다만 카드사들은 당분간은 6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이벤트성이 아닌 정기적인 형태로 재개하기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입니다. 아직 시장 불확실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중앙은행(ECB)는 SVB 사태와 CS 위기 확산에도 물가를 잡겠다면서 기준금리를 올렸다”면서 “다음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기준금리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 또 동향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여전채 조달금리는 레고랜드 사태 이후에 비하면 좀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어 카드사가 섣불리 나서기 어렵지 않겠나”라고 내다봤습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