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설탕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국내 식품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설탕 제조업체가 가격 상승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인상을 단행할 경우 소비자에게 까지 그 영향이 미칠 수 있어서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4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7.2p로 전달(126.5p)과 견줘 0.6% 올랐다. 지난해 3월 최고점(159.7p)을 찍은 후 줄곧 내림세를 타다 상승세로 전환한 것이다.
FAO는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 가격 동향을 조사해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달 발표한다. 2014∼2016년 평균을 100p로 정하고 가격을 비교한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곡물가격지수는 전달(138.6p)보다 1.7% 떨어진 136.1p를 기록했다.
그간 가격 상승을 이끌던 곡물 가격은 하락세를 보였다. 세부 품목별로 살펴보면 곡물 가격지수가 136.1로 전달(138.6) 대비 1.7% 떨어졌다. 이는 러시아와 호주에서 수출할 수 있는 밀의 양이 늘어난 것과 유럽의 밀 작황이 양호해진 덕분이다. 이외에 우크라이나 곡물의 자국 경유 수출을 금지했던 유럽 국가들이 이를 다시 허용하도록 합의한 것 등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제는 설탕 가격이 오르고 있다. 설탕은 149.4p로 전월(127.0p)보다 17.6%나 뛰며 3개월 연속 오름세였다. 이는 2011년 10월 이후 11년 6개월 만에 가장 크게 오른 수준이다.
가격 상승 이유는 공급이 부족해서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고온과 폭우로 설탕 생산량이 감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설탕 원료인 사탕수수를 에탄올 생산으로 돌리는 경우도 많다. 최대 생산국 인도는 생산량 감소를 이유로 설탕 수출 제한을 이어가는 중이다. 태국과 유럽연합(EU)의 생산량도 기대보다 밑돌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에 국내 설탕 시장도 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 설탕 시장은 대한제당, 삼양사, CJ제일제당 3개 기업이 양분하고 있다. 제당 3사는 지난해 설탕 가격을 20% 이상 인상한 데에 이어 이달 빵·과자·아이스크림 등 식품업체에 공급하는 B2B(기업대기업간) 설탕값을 올리기로 최근 결정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한제당의 원당 가격은 2022년 톤당 485달러로 2021년 424달러 대비 14.4%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설탕인 정백 가격은 1㎏당 895원으로 전년 718원 대비 24.7% 올랐다. 원재료 가격 인상률보다 10.3% 포인트 높게 설탕 가격을 올린 것이다.
삼양사 역시 원당 가격 인상률보다 큰 폭으로 설탕 가격을 올렸다. 삼양사의 원당 가격은 2022년 톤 당 484달러로 2021년 409달러 대비 18.3% 증가했다. 반면 큐원 설탕 가격은 같은 기간 톤 당 75만9000원에서 91만7000원으로 20.8% 늘었다.
CJ제일제당은 원가 부담이 가장 높았지만 설탕 가격 인상 폭은 더 작다. CJ제일제당의 2022년 원당 매입 가격은 톤 당 63만원으로 2021년 46만2000원 대비 36.4% 올랐다. 이에 반해 설탕인 정백당 가격은 2022년 톤 당 93만4000원으로 2021년 77만8000원 대비 20.1% 조정했다.
이른바 슈가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경우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도 온다. 설탕은 식품뿐 아니라 다양한 음식에도 들어가는 기초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원부자재값, 물류비, 인건비 등의 상승으로 전체적으로 외식 물가가 치솟았다. 당시 식용유 대란이 일어나기도 했지 않은가"라며 "설탕도 음식에 들어가는 공통 요소인 만큼 공급 업체들이 가격을 올리기 시작하면 업계 전반적으로 인상 행렬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