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내뱉은 한 소절에 공연장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무대 위를 온전히 채우는 가왕의 존재감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13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2023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는 가왕 조용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른 장이었다.
이날 잠실벌을 채운 관객은 약 3만5000명. 공연 시작 전부터 주경기장 주변은 인파로 북적였다. 현장을 찾은 관객 대다수는 그와 청춘을 함께한 중장년층이었다. 야광봉을 소중히 쥔 얼굴들에 설렘이 가득 묻어났다. 주최 측은 응원봉을 전 관객에게 무료 배포했다. 응원봉 사용법을 설명하는 자녀와 이를 경청하며 눈을 반짝이는 부모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응원봉에 불이 들어오기만 해도 경기장을 뒤흔드는 함성이 쏟아졌다. 객석에는 ‘형님!’, ‘오빠!’ 등이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이윽고 암전된 무대 위 반원 모양의 초대형 LED가 번쩍이자 잠실벌은 세차게 들썩였다.
공연의 포문을 연 건 1985년 발표한 ‘미지의 세계’. “이 순간을 영원히 / 아름다운 마음으로 / 순간을 놓치지 말아요…♩”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전광판에 조용필의 모습이 가득 들어차자 주경기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불꽃축제를 방불케 한 대형 폭죽쇼도 볼거리였다. 기타 리프에 맞춰 형형색색 반짝이는 불빛이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왕은 무대를 갖고 놀았다. 자유자재로 노래하며 음악을 즐겼다. ‘바람의 노래’와 ‘친구여’로 감동을 전하고 ‘태양의 눈’으로 무대를 압도하더니 ‘고추잠자리’와 ‘모나리자’로는 객석 호응을 거침없이 유도했다. 그와 오랜 시간 호흡한 밴드 위대한탄생의 걸출한 연주도 빼놓을 수 없다. 폭발하는 듯한 드럼과 강렬한 전자기타 연주에 조용필 특유의 목소리가 더해지자 객석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곡에 맞춰 LED에 펼쳐지는 특수효과 연출은 무대에 더 몰입하게 했다.
가왕은 쉴 줄 몰랐다. 휘몰아치는 라이브 공연에 관객은 때때로 따라 부르거나 환호를 내지르고 눈물 흘렸다. “인생을 여러분과 함께해왔다”며 데뷔 햇수인 쉰다섯을 자처한 조용필은 우렁찬 인사로 팬들과 마주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별로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냥 즐기세요. 저는 노래할게요!” 그간 공연에서 잘 부르지 않던 인기곡 ‘돌아와요 부산항에’, ‘잊혀진 사랑’을 열창할 땐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창밖의 여자’를 부를 땐 ‘오빠’를 연호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기도하는~”으로 시작하는 도입이 유명한 ‘비련’을 부를 땐 함성이 쏟아졌다. 지난달 26일 공개한 정규 20집 선공개곡 ‘필링 오브 유’ 무대에는 곳곳에서 엄지를 치켜드는 관객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이 열린 120분 동안 관객은 모두 청춘이었다. 이들은 노래로 추억을 만나고 지난 시간을 향유하며 현재를 만끽했다. 공연 말미 ‘뿅 뿅 뿅’하는 익숙한 전자음과 함께 ‘단발머리’ 전주가 흘러나오자 객석에선 박수갈채와 함께 웃음꽃이 피었다. 노래하는 조용필은 물론 연주하는 위대한탄생, 무대를 즐기는 관객 모두 미소 지으며 무대를 즐겼다. VCR이 비춘 객석에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아닌 그 시대의 청춘만이 있었다. 조용필은 “공연을 준비하며 떨리는 마음을 어찌할 줄 몰랐다”면서 “여러분의 환호를 들으며 함께하니까 정말 좋다”며 부푼 감회를 전했다. 조용필은 오는 27일 대구 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2023 조용필&위대한 탄생’ 콘서트로 팬들과 한 번 더 만난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