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흥국화재가 지난해 일반 신용대출 차주들을 상대로 부당한 추심을 했다”는 공익신고가 지난달 1일 금감원에 접수됐다.
흥국화재는 자사 보험 가입자에게 일반신용대출을 하고 있다. 대출금액 최소 100만원~최대 3000만원, 상환방식은 원금균등분할이다.
보험, 카드사 등 제2금융권 대출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중저신용자의 급전 창구다. 대신 금리가 높아 대출받은 사람에게 부담이 크다. 손해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흥국화재의 지난달 신용대출 대출금리는 11.56%였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 대출금리 평균값은 10.15%다.
“파산면책자에게 빚 상환 설득” 공익신고
공익신고에는 흥국화재가 파산선고 후 면책 결정 받은 차주들에게 보험금이나 해지환급금을 지급 제한 걸고, 채무를 일부라도 변제해야 지급할 수 있다고 회유·설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때로는 계약자 변경을 미끼 삼아 추심했다는 주장이다.
공익신고자에 따르면 보험사는 ‘금감원에 민원 넣겠다’며 항의하는 고객은 일명 ‘방생’, 즉 풀어줬다. 법을 잘 모르거나 당장 보험금이 급한 일부 차주는 돈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제12조에 따르면 파산절차 또는 개인회생절차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 면책되었음을 알면서 법령으로 정한 절차 외에서 반복적으로 채무변제를 요구하는 행위는 불공정한 행위에 해당한다.
또 금감원은 △개인회생·파산자에게 추심 △가족, 관계인 등 제3자에게 채무사실 고지 △가족, 관계인 등 제3자에게 채무변제 요구 행위를 불법채권추심 10대 유형에 명시했다.
계약자 변경하려다…해지환급금 납부
구체적 사례도 있다. A씨는 지난해 6월 흥국화재를 찾아 보험의 계약자 변경을 요청했다. 기존 계약자(보험료를 납부하는 자)는 남편, 피보험자(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는 자)는 A씨였다. 이혼 후 계약자를 본인으로 바꾸려 했다.
전남편은 보험사에 400여만원의 일반 신용대출 연체금이 있었지만 2021년 7월 법원에서 면책 결정 받은 상태였다.
계약자 변경은 돈이 들지 않는다. 변경 전·후 계약자가 함께 보험사를 방문하거나, 두 명 중 한 명이 이전 계약자 인감증명서, 도장 등 필요한 요건을 갖춰 가면 변경할 수 있다. 우편(등기)로도 가능하다.
그런데 A씨의 경우, 해지환급금(170여만원)을 납부하고 계약자 변경을 했다. 직원이 내부 전산망에 올린 품의서에는 “개인 파산해 대출 원리금 회수 불가능한 상황이나 피보험자가 해지환급금을 당사에 상환하고 계약자 변경 요청해 부득이 거절할 사유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피보험자가 자발적인 의지로 돈을 갚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보이는 사례도 있었다. 지난해 3월 흥국화재는 망자에 대한 도의적 책임를 이유로 생활과 거동이 어려운 노인에게 사망한 아들이 진 빚(100여만원) 상환을 설득했다. 품의서에는 “상속인 거동 및 생활이 어려워 이자를 일부 감면하고 잔존 채무를 조기 일시 회수시 실익이 있다고 판단됨”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 “부당 추심 소지 있어”
파산전문 법조인들은 “정확한 사실 관계를 알 수 없어 명확한 판단이 어렵다”면서도 부당 추심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회생법원 파산관재인을 17년째 역임 중인 홍현필 변호사는 첫 번째 사례를 두고 “정황상 전남편이 갚지 못한 빚을 문제 삼아 아내에게 받아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면책결정 확정 전 전남편이 보험 해지했다면, 보험사는 신용대출이 있기 때문에 해지환급금을 상계처리(비용처리)해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친 상황에서 아내가 오니 대신 추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남편은 파산 면책됐기에 신용대출에 대한 책임도 없고, 아내는 이와 무관하게 정당한 계약 변경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서 “보험사가 시간을 끌거나, 본인들 말대로 해야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면 상대적 약자인 계약자는 보험사가 하자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한 변호사 역시 “파산면책 절차를 진행해서 면책된 채무를 변제하는 조건으로 계약자 변경을 해주는 것은 부당한 채권추심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봤다.
채무자의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일정 범위 재산을 살려주는 ‘면제재산제도’ 시행 정신과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왔다. 서울회생법원 파산관재인이자 도산법(회생·파산) 전문 변호사인 윤모 변호사는 “채무자 생존을 위해 법원과 파산관재인이 면제 대상으로 남겨둔 재산을 보험사가 우회적으로 가져가는 것은 가혹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흥국화재 준법감시팀은 지난 2월 파산면책자에 상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채무자 면책 결정이 확정됐다 하더라도, 채무 그 자체는 소멸되지 않고 책임만 소멸된다고 본 자연채무설을 근거로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은 지난해 금융사의 과도한 추심행위 및 불법 추심행위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금리·고물가로 취약차주 채무상환 어려움이 크다는 점을 감안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조사가 진행 중이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흥국화재 관계자는 “아직 금감원에서 정식 통보 받지 않아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