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바닥 된 기분.” 지난 8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그룹 앤팀(&TEAM) 팬사인회에 참여한 한 팬은 SNS에 이렇게 적었다. 팬사인회 당시 보안요원으로부터 갑작스레 몸수색을 당한 심경이었다. 행사에 다녀온 팬들은 “팬사인회에서 브래지어 검사하는 경우는 처음” “‘가슴 좀 만질게요’ 하더니 갑자기 가슴골을 만졌다” “‘(속옷에 숨긴 것이) 워치(스마트워치)죠?’ 하면서 나를 작은 공간으로 끌고 가더니 옷을 올리라고 했다” 등 성토를 쏟아냈다. 팬사인회 주최 측은 10일 사과했으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K팝 산업은 팽창했지만, 기획사와 팬덤 사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기획사가 팬들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이 되풀이되면서다. 지난 2월 그룹 NCT 드림이 해외 일정을 마치고 입국하던 인천국제공항에선 현장에 있던 팬이 경호원에게 밀쳐져 전치 5주의 골절상을 입었다. 해당 경호원은 폭행 혐의로 피소돼 검찰에 넘겨졌다. 2018년엔 그룹 워너원 매니저가 팬을 거칠게 밀치는 장면이 온라인에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 측은 “해당 매니저는 과잉대응한 부분을 깊게 반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앤팀 팬사인회에서 벌어진 몸수색도 K팝 팬들에겐 낯선 풍경이 아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그룹 엑소 콘서트에서 관객이 촬영 장비를 지녔는지 확인하겠다며 과도하게 몸수색을 벌여 비판받았다. 공연 입장 시 본인 확인을 하겠다며 신분증을 요구하고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를 읊게 하는 사례도 흔하다. 팬들은 기획사의 이 같은 조처가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행사에서 배제될까 우려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하는 처지다. 사정이 이러니 K팝 팬들 사이에선 “아이돌 팬은 불가촉천민”이란 자조가 나온다.
기획사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다.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기획사 관계자는 “아티스트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팬사인회 등 행사에서 나온 발언을 교묘히 편집해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호소했다. 앤팀 팬사인회 주최 측도 사과문에서 “팬사인회 대화 녹음이 외부에 유출돼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곤란해지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녹음과 촬영이 가능한 전자 장비 반입을 엄격하게 제한해왔다”며 “그러나 8일 전자 장비를 몸에 숨겨 반입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해 이를 확인하는 보안 검사가 여성 보안요원에 의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사과문은 하이브 산하 온라인 커머셜 플랫폼인 위버스샵 명의로 나왔을 뿐, 소속사인 하이브 재팬 측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K팝은 팬 중심 산업인데 기획사들이 이런 측면을 간과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전근대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과잉통제가 기획사의 경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이다. 김 평론가는 “행사 보안·경호 담당자는 대부분 외주 용역 업체를 통해 동원하는데, 이로 인해 K팝의 근본적인 철학과 정신을 숙지하지 못한 채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팬사인회 몸수색과 같은 경험담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면 기획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물론, K팝 브랜드가 훼손될 가능성도 있다. 기획사가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K팝 외연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