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면 무대 위는 행성들이 부유하는 우주. 그 안에서 나타난 열두 청년들이 1만7000여 관객을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끌었다. 그룹 세븐틴이라는 세계로.
21일 서울 고척스카디옴에서 열린 세븐틴 콘서트 ‘팔로우’(FOLLOW)는 세븐틴이 무엇으로 이뤄진 팀인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첫 곡 ‘손오공’이 보여준 열쇳말은 열정. “힘을 다하고 쓰러져도/ 포기를 모르고 날뛰는 중”이란 노랫말은 몸이 부수어지도록 춤추는 세븐틴과 만나 생명을 얻었다. “내가 미쳐도 좋아”라는 ‘돈키호테’의 패기 역시, 머리카락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도 즐겁다는 듯 웃는 멤버들을 통해 비로소 완성됐다. 데뷔 초부터 군무 각도가 칼 같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븐틴은 9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칼군무’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멤버들이 “공연장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서 폭염 경보가 내린 것 같다”고 농담할 만큼 공연은 내내 절정-절정-절정으로 치달았다. ‘박수’, ‘울고 싶지 않아’, ‘핫’(HOT) 등 새로운 무대를 알리는 전주가 흐를 때마다 공연장은 함성으로 뒤덮였다. 멤버들은 보컬·퍼포먼스·힙합 세 팀으로 쪼개져 유닛 무대도 선보였다. 데뷔곡부터 지난 4월 발매한 미니 10집까지 아우른 세트 리스트를 두고 멤버들은 “큐시트가 만만치 않다”면서도 “무더위를 이겨낼 만큼 재밌는 공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콘서트는 한 편의 축제 같았다. 노래가 신나서만은 아니다. 멤버들이 내뿜는 유쾌한 에너지가 세븐틴다움에 방점을 찍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지상 최고의 쇼가 시작됩니다”라는 말로 시작한 ‘홈런’, ‘레프트&라이트’(Left&Right), ‘뷰티풀’(Beautiful), ‘아낀다’ 무대가 특히 그랬다. 스쿨룩 차림으로 등장한 세븐틴은 뮤지컬처럼 공연을 연출해 관객을 들썩이게 했다. 이별하는 순간을 전자음악으로 풀어낸 ‘울고 싶지 않아’와 팬들에게 헌정하는 ‘고맙다’는 세븐틴표 서정성의 정수를 보여줬다.
세븐틴 세계를 완성한 마지막 조각은 긍정이었다. “숨겨진 우리의 슬픔마저 사랑하자”고 말하는 ‘어른 아이’, 지금 내리는 비가 훗날 꽃을 피워낼 거라는 ‘에이프릴 샤워’(Arpil Shower) 등이 그 본보기다. 이달 초부터 건강 문제로 활동을 멈춘 멤버 승관을 언급할 때도 세븐틴은 걱정이나 염려보단 응원을 당부했다. 팬들은 “승관아 우린 언제나 함께야” “승관아 행복하자”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승관은 이날 객석에서 공연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멤버 우지는 공연 말미 “데뷔곡 ‘아낀다’를 오랜만에 부르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열심히 살던 어린 날의 우리가 생각났다. 그때 우리가 이 광경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올 수 있도록 한 힘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하면 그 답은 늘 여러분”이라며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리더 에스쿱스는 공연을 앞두고 불거진 좌석 추첨제 논란을 의식한 듯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걸 잘 안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화내고 싸우는 건 우리가 하겠다. 여러분은 공연장에 기분 좋게 행복하게 오실 수 있으면 좋겠다”며 “몸과 마음 모두 아프지 않고 행복하길 바란다. 여러분이 앞으로도 우리를 응원해 주신다면 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해 노래하겠다”고 약속했다.
세븐틴은 22일 서울에서 한 차례 더 공연을 열고 오는 9월6~7일 일본 도쿄돔으로 넘어간다. 본격적인 일본 투어는 11월 시작한다. 11월23~24일 사이타마 베루나 돔, 11월30일과 12월 2~3일 반테린 돔 나고야, 12월7일과 9~10일 교세라 돔 오사카, 12월16~17일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에서 현지 팬들을 만난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