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1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그룹 르세라핌 첫 콘서트 이야기다. 소속사 쏘스뮤직은 “역대급 퍼포먼스” “거대한 무대장치” “규모감 있는 연출”을 강조했지만, 연출의 완성도는 떨어졌고 메시지의 유기성도 부족했다. 그나마 모든 곡을 라이브로 소화하는 멤버들의 실력만 빛났다.
시작은 대담했다. “세상은 나를 평가해.” 리더 김채원이 이렇게 말하자 다섯 멤버는 차례차례 뒤로 쓰러지듯 몸을 눕혔다. 하지만 이것은 추락이 아닌 세상을 향한 반격. ‘두려움 없는’이란 뜻의 영어 단어(fearless)를 재조합해 팀 이름을 지은 르세라핌은 이 짧은 퍼포먼스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포효했다.
다만 이어진 무대에선 창의적인 연출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뒤편 LED 화면으로 각종 영상을 내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마저도 의미를 알 수 없거나 조명과 색깔이 조화되지 않았다. 소속사는 “공연을 ‘불씨’, ‘발화’ ‘불꽃’ ‘비상’ 네 섹션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지만, 각 섹션의 주제를 충분히 시각화하진 못했다. 공연 초반엔 장내에 안개가 자욱하게 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기도 했다.
회당 최대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 규모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노래 ‘더 그레이트 머메이드’(The Great Mermaid)와 ‘더 히드라’(The Hydra)를 제외한 모든 무대가 보조 댄서 없이 다섯 멤버로만 채워졌다. 체력 소모가 컸기 때문일까. 2~3곡마다 토크와 녹화 영상 상영이 반복돼 각 무대 사이 연결고리를 약하게 했다. 티켓 가격(VIP 좌석 19만8000원)을 고려하면 이것이 최선의 연출이었는지 묻게 된다.
가장 눈부신 순간은 ‘언포기븐’(UNFORGIVEN) 무대였다. 르세라핌은 숱한 연습과 무대 경험으로 쌓은 자신감과 터질 듯한 에너지로 “한계 위로 남겨지는 우리 이름”이란 포부를 토해냈다. 공연에서 처음 공개한 신곡 ‘위 갓 소 머치’(We got so much)는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우리에겐 아주 많은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이 곡을 부른 뒤 멤버들은 “행복하고 여운이 남는다”고 했다.
멤버 홍은채는 “이번 공연으로 피어나(르세라핌 팬덤)와 함께라면 더 높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피어나와 우리가 서로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허윤진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려움이 반드시 적(敵)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이 르세라핌과 피어나의 관계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인생에서 두려움을 다 없애진 못하겠지만, 서로에게 용기를 주면서 덜 두렵도록 노력할 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틀간 이어진 공연에 1만500여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팬클럽 회원을 대상으로 선예매를 시작한 지 8분 만에 모든 티켓이 팔려나가 시야제한석도 개방했다. 르세라핌은 오는 23일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 도쿄, 오사카에서 공연을 연다. 이후엔 홍콩, 인도네시아, 태국으로 향한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