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을 자발적으로 줄이라고요? 지금 이대로라면 편리함에 더 익숙해질 거 같아요. 일회용품은 저렴하고 구하기 쉽잖아요.”
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 지원 정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개인의 양심과 선의에 기대는 방식으론 일상 속 스며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환경부는 매장 내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등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 플라스틱 빨대는 계도기간을 연장했고, 종이컵은 일회용품 사용규제 품목에서 아예 제외됐다. 소상공인 부담 가중 및 소비자 만족도가 낮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일회용품 줄이기는 정부의 규제를 통해서 하기보다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실천을 통해 더욱 성공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믿고 있다”며 자발적 참여를 호소했다.
규제가 아닌 권고와 지원으로 일회용품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시민들 반응은 싸늘했다. 5년차 직장인 김모(27)씨는 “평소 환경을 위해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심시간 텀블러를 들고 밥 먹으러 나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며 “강력한 인센티브도 없고, 정부도 강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율적으로 감축이 되겠냐”고 말했다.
신호영(30‧직장인)씨는 이번 정책 철회에 대해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따라온 사람만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지적했다. 신씨는 “일회용품 규제 정책 철회 소식을 듣고, 이제 플라스틱 빨대 쓸 수 있겠다며 잠시 좋아했다”라며 “환경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책임감 없이 일회용품을 남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4억톤이 넘는다. 2060년엔 3배가 넘는 12억톤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스틱 생산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국가 주도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강력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
시민들도 일회용품을 줄이려면 개인의 역할보다 정부의 기조와 정책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소라(27‧자영업‧가명)씨는 “사용자가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이런 정책을 취한다면 기업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플라스틱 등 일회용품 없애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민 인식 개선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개선”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은 ‘아나바다 운동(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자는 자원절약 운동)’도 잘 실천한 나라이기에 정책이 개선되면 알아서 따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각국에선 플라스틱 규제를 정부가 나서서 주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7월부터 플라스틱세 등 강력한 플라스틱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재활용 불가능한 플라스틱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대체품이 있는 플라스틱 빨대‧식기도구‧컵‧접시 등의 시장 출시를 금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환경 선진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한발 더 나아가 지난 1월부터 종이, 생분해플라스틱도 매장 내에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은 재생 플라스틱 비중이 낮은 포장재에 세금을 더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환경단체는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일회용’으로 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는 “정책의 힘이 신뢰와 일관성에 있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아쉬운 결정”이라며 “일회용품 규제는 탄소 감축을 위한 첫 관문이라 시스템 구축과 지원에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환경 위기는 직진 중”이라며 “당장 내년부터 발효될 국제플라스틱협약엔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유민지 기자 mj@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