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연설로 주목받은 서울 시내버스가 있다. 6411노선이다. 노 의원은 이 버스를 이른 새벽부터 서울 강남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를 실어나는 시민의 발로 표현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새벽, 6411번 버스는 오지 않았다. 이른 새벽 일터로 나가야했던 시민들은 택시를 잡거나 인근 지하철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날 서울버스노조는 2012년 이후 12년만에 파업을 결정했다. 새벽부터 시민들은 오지 않은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렸다. 서울시는 전날인 27일부터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하고 파업 상황을 실시간 점검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편함을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파업은 시가 노사 협상 중재에 적극 나선 끝에 이날 오후 3시20분경 철회됐다. 오후 4부터 시내버스 운행은 정상화됐다.
하루 종일 시민들을 볼모로 한 파업으로 노조는 임금인상 4.48%와 명절수당 65만원 신설을 이끌어 냈다. 노조는 파업에 앞서 12.7%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했다. 2023년 임금인상률이 3.5%였던 것을 감안하면 3배 이상 높은 무리한 요구로 비춰질 수 있다. 또 서울 시내버스 적자가 지난해 약 5000억원었던 것을 고려하면 노조측 주장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노조는 총선을 앞두고 파업이라는 초강수로 협상력을 높여 예년 보다 높은 임금인상을 이끌어 냈다.
버스운행이 적자임에도 노조가 임금인상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준공영제로 운행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지난 2004년 버스할인제도를 도입하면서 시내버스 적자부분을 재정으로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를 운영하고 있다. 임금인상 타협으로 시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재정규모는 약 6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파업으로 노조는 따가운 시선을, 시는 재정부담이 늘었지만, 사측인 버스회사는 잃은 것이 없다. 시에서 보조금을 지급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공공교통수단으로 서울시에서 시민 혈세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해당 보조금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버스기사 임금이나 근무 환경개선과 시민들의 불편개선에 얼마나 사용됐는지 꼼꼼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다.
그동안 서울 시내버스는 투자자들의 수익만 추구하는 사모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지난 8월 이후 서울지역 시내버스 운영사 65곳 중 사모펀드 손에 넘어간 회사는 7곳이다. 사모펀드의 버스업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졌다. 운영수익 극대화에만 치중한 버스회사가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임원들이 과도한 임금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사모펀드 관리도 문제지만, 서울버스 운행 적자를 해소하고 시의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버스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 실제 코로나 여파로 버스 이용이 저조했던 2022년에는 적자가 8571억원에 달했다. 버스 이용률을 높이려면 시민들에게 메리트(이득)가 있어야 한다. 서울시가 지난 1월27일부터 도입한 ‘기후동행카드’가 해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후동행카드는 월 6만원대로 서울 시내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이다. 시는 6월까지 시범 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개선한 후 7월부터 정식 도입할 계획이다. 두 달가량 시행된 시범운영 기간 동안 1일권, 1주일권, 1개월권 등 다양한 옵션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영국에서 운영하는 버스 전용권 도입도 고려할 수 있는 사항이다. 영국의 경우 버스 전용권은 지하철 등 다른 대중교통 수단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트래블카드보다 저렴하다. 버스만 이용하는 시민들에겐 금전적 혜택을, 버스 회사에겐 수익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시는 노조와 협상을 타결하면서 “당분간 요금 인상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시 재정만 투입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시 재정부담을 줄이며, 시민도 노조도 함께 반길만한 해법을 지금부터라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시민의 발인 6411번 버스가 멈추는 일은 없길 기대해 본다.
김태구 사회부장 ktae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