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겐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1주년이자, 창사 55년만의 첫 파업일이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절대 안 된다던 이병철 창업주의 일화를 되새겨보면 새삼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삼성전자의 7일은 무척이나 조용해 보인다. 격일 연휴를 활용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영리한 ‘연차 파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1조원 영업적자에서 느껴지는 위기감에 선대회장의 선언일이 더욱 조심스럽기도 할 것이다.
전삼노 선언 이후 위기를 맞은 삼성의 파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목소리들이 튀어 나왔다. 노동경제학자 프리먼과 메도프도 비슷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1984년 저술한 ‘노동조합은 무슨 일을 하는가?(What Do Unions Do?)’를 통해 노조는 ‘소통’이라는 순기능과 ‘독점’이라는 역기능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점을 통한 기득권의 세력화에 빠진 노조에게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도 했다. 전삼노의 파업을 놓고 노동 운동의 본질 보다는 정치화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거듭 제기되는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전삼노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민주노총 조직화에만 힘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합원 절반의 동의가 필요한 상급단체 변경을 두고 노노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또 업계에선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금속노조 가입으로 반도체·전자업계의 균형추가 한 곳으로 쏠릴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득권 지키기와 잦은 파업으로 비판을 받았던 현대차와 기아차지부 조합원이 과반을 차지한 곳이니 그럴만하다.
그렇다면 전삼노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기득권 세력화를 경계하고 있는가. 현대차를 보자. 세력화된 노조 활동에 의한 정규직 직원들의 ‘고임금 저숙련’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혁신보다 단기이익에 집중하며 노조가 사측과 담합해 비정규직 불평등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위기론 속에서도 평균 1억2000만원에 5.1% 임금인상이 결정된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의 22.7%에 불과한 전삼노의 대표성은 차치하고 내부에서도 공감대를 얻지 못한 정치색에 반감이 만만치 않다. 삼성이라는 대표성 때문인지 강성을 띄는 노조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다.
물론 문제는 직원들에 불신을 심어준 기업에게 있다. 투명하지 못한 경영과 성과 배분의 불통에 대한 책임이 크다. 불신의 악순환을 끊을 노사상생의 준비가 된 기업과 노조가 혁신과 성장의 동력을 찾을 수 있다. 전삼노에게 필요한 것은 기득권 보다 대의명분이다. 명분을 기반으로 한 대표성이 없다보니 정치세력화의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단기이익을 쫒을게 아니라 삼성과 회장에게 성장 동력 회복을 위한 혁신의 답을 요구해야 한다.
정순영 산업부장 binia9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