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제발 고만 좀 싸워” 참매 육아 일기

“얘들아! 제발 고만 좀 싸워” 참매 육아 일기

- 깊은 산속, 참매 어미는 육아 전쟁 중
- 새끼들 서열 명확, 형이 다 먹고 나야 먹을 수 있어
- 남의 둥지서 새끼 잡아오는 사이 내 둥지 새끼 잃기도

기사승인 2024-06-16 06:00:07
"이번엔 누구 차례지"
태어난지 얼마안된 참매 새끼들에게 어미가 부드러운 부분을 골라 차례대로 먹이고 있다. 새끼들은 둥지에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힘이 센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진다. 알을 품어서 둥지를 벗어나기까지 부모 새의 희생과 강자 우선의 법칙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새끼들의 치열한 경쟁을 관찰하다 보면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대자연의 질서에 대해 고개가 숙여진다.

- 냉혹해 보이지만 치열한 생태계 순리
- 새끼들 아무리 먹여도 끝없이 보채
- 둥지 떠나도 비행술과 사냥 능력 키워줘
- 비행 훈련 중인 어린 새 ‘보라매’

'형, 맛있겠다'
12일 오전, 어미참매가 다른 둥지에서 잡아온 부드러운 먹잇감을 맛나게 먹자 동생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있다.
'형, 거의 다 먹어가네'
동생이 어미 참매가 잡아온 먹잇감을 독차지해 거의 다 먹어가자 아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형이라도 못참아'
배가 고픈 동생은 형이 먹이를 거의 다 먹어가자 형에게 싸움을 걸고 있다.
너는 좀 혼나야겠다’
힘 센 형이 동생을 둥지 끝으로 몰아부치며 공격하고 있다.
‘동생 공격 좀 받아봐’
아무리 형이지만 조금이라도 남겨줘야하는거 아냐!
'힘에서 밀리면 끝장'
형과 동생이 머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 녀석들이 정말'
옆 나무에서 수컷의 먹이사냥을 기다리고 있던 어미가 새끼들의 싸움이 격렬해지자 둥지로 돌아오고 있다.
'일단 떼어놔야지'
어미참매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식들 사이를 파고 들면서 싸움을 말리고 있다.
'내가 잠시도 쉬지를 못해요'
새끼들의 싸움을 겨우 뜯어말린 어미 참매, 새끼들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않는 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형한테 덤비면 안된다'
어미참매가  동생에게 형하고 싸우다가 잘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면서 형한테 덤비지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다.
'또 다시 싸우기만 해봐라'
어미참매가 새끼들을 앉혀놓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다.
'그래, 형이 미안하다'
엄마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형이 동생에게 사과하고 있다.
'자식이 뭔지'
새끼들을 한참동안 야단치고 난 후 어미 참매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하여간 못 말려'
싸우지 않겠다고 대답한지 얼마 안되서 또다시 먹이다툼을 벌이는 형제들

참매와의 만남
이달 초 춘천에 거주하는 생태사진가 용환국 씨가 춘천 시 동면의 한 깊은 산속에서 참매가 새끼 3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연락해왔다. 아직 솜털이 뽀송뽀송한 걸 보면 태어난지 일주일 전후 인 것 같다고 전한다. 서둘러 지난 11일 이른 아침 용 작가와 함께 생태 촬영용 600mm 렌즈와 듬직한 삼각대, 먹거리까지 챙겨서 참매 둥지가 있는 산 속을 향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목화송이처럼 하얀 참매 새끼를 어미가 보살피고 있다.

모처럼 양어깨에 수십 kg에 달하는 무거운 장비를 메고 길도 없는 급경사를 오르니 잠깐사이 온 몸은 땀으로 축축하고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행이 체력이 모두 방전되기 전 참매부부가 육아전쟁이 한창인 현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참매가 새끼들을 키우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떨어진 거리에 설치한 위장막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누구지'
조용한 산 속에 낮선 사람들이 나타나자 새끼들은 최대한 몸을 낮추고 어미새는 매서운 눈으로 취재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초대형 렌즈를 삼각대 위에 설치하고 오래된 침엽수림의 한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돌보고 있는 어미 참매의 눈에 초점을 맞췄다. 참매 어미는 얼마나 예민한지 조용히 위장 천막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매서운 눈을 떼지 않았다. 당장 이동하지 않으며 공격이라도 하겠다는 눈빛이다. 매처럼 날카롭게 노려본다는 ‘응시(鷹視)’란 단어를 실감한 순간이다.
어느정도 긴장이 풀어지자 새끼들은 다시 몸을 세우고 세상 구경에 나섰다.

얼마를 숨죽이며 기다렸을까, 어미 품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새끼들이 일어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순간 용 작가가 나에게 손가락으로 둘을 가리키며 새끼가 두 마리 밖에 없단다. 이틀 전 만해도 세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이다. 의아한 일이지만 용 작가는 “생태계에서는 원인은 알 수 없는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진다”면서 “발육이 좋지 않은 새끼는 어미나 형제들이 도태시킨다. 아니면 집을 비운 사이 어치나 담비 등의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첫날은 나머지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며 어미참매 꼬리를 물고 곁에서 아무리 울고 보채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하루 종일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않았어도 참매 가족의 증명사진 외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아빠 사냥 실력이 어때'
12일 아침, 참매 수컷이 두더지를 잡아 새끼들이 먹기 어려운 목을 잘라내고 새끼들 앞에 먹이를 놓아주고 있다.  

이튿날인 12일,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참매 둥지를 다시 찾았다. 카메라를 설치하자마자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순간 전날 얼굴을 보지 못했던 수컷 참매가 두더지를 한 마리 잡아와 새끼들 앞에 놓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둥지 아래 가지에 앉아있던 암컷이 둥지로 들어와 정성껏 먹이를 손질해 새끼들에게 먹인다. 새끼들은 전날 하루 종일 굶은 탓인지 어미가 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잘도 받아 먹었다. 순식간에 먹이를 해치운 새끼들은 다시 어미의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더 달라고 야단이다. 어미새는 둥지를 벗어난지 10분도 안되서 다른 둥지의 아직 털도 나지않는 새끼를 잡아와 둥지에 던져놓고는 다시 먹이를 구하기위해 둥지를 벗어났다.
'엄마 감사해요'
어미 참매가 인근 되지빠귀 둥지에서 새끼를 잡아와 둥지에 놓아주자 힘센 참매 새끼가 먹잇감을 덥석 물고 있다.

야생의 세계는 서열이 분명해 덩치가 큰 새끼가 먼저 먹이를 먹고 난 후에야 다음 서열의 새끼가 나머지 먹이를 차지한다. 참매 새끼들 역시 덩치가 조금 크고 힘이 센 형이 어미가 잡아다 준 먹이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의 먹이가 다 없어지도록 형이 먹이를 나눠줄 생각이 없자 동생이 반격에 나섰다. 동생이 날개를 활짝 펴고 형을 공격하자 형 역시도 날개를 펴면서 둘을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이따금 동생의 반격도 있었지만 거의 형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훈육하는 어미 참매'
새끼들이 먹이를 가지고 심하게 싸우자 어미새가 새끼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며칠전 세마리 새끼 중 한마리를 잃어버린 참매 어미는 신경이 날카로워 보였다.

이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미 새가 둥지에 내려앉아 싸움이 한참인 두 새끼 사이로 파고들었다. 어미새는 새끼들을 떨구어 놓고는 형제를 호되게 야단쳤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어미 새는 혼자 먹이를 다 먹은 욕심 많은 형을 야단칠만도 한데 오히려 동생에게 주의를 준다. 인간의 감성일 뿐이다. 서열을 무시하고 형하고 싸우면 어떤 일이 벌이질지 모른다고 주의를 주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아, 내 점프실력 어때'어미가 물어다준 먹이를 충분히 먹은 형이 동생 앞에서 점프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한배에서 태어난 혈육이지만 더 많이 먹고자 다투는 모습은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야생의 생존본능이다. 참매가족에게는 긴장의 순간이었지만 기자에게는 아무 성과가 없었던 어제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을 만큼 다양한 그림을 선사해준 행운의 순간이었다.
참매는 둥지를 새로 짓기도 하지만 새집을 짓는 건 생각보다는 힘든 일이어서 지난 해 둥지를 보수해서 재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참매는?
수리목 수리과에 속하는 참매는 1982년 천연기념물 제323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중형 맹금류로 법종보호종이다. 몸길이 48∼61cm의 참매는 수컷에 비해 암컷이 조금 더 크다. 몸의 윗면은 푸른빛이 도는 회색으로 흰색 눈썹선이 뚜렷하고 윗목은 흰색으로 얼룩져 있다. 아랫면은 흰색 바탕에 잿빛을 띤 갈색 가로무늬가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날 때는 비교적 짧으면서 넓은 날개와 긴 꽁지가 눈에 띈다.
'벌 서는게 아닙니다'
'엄마, 이렇게 하는게 맞아요' 참매 새끼가 어미 앞에서 날개 짓 연습을 하고 있다.

예로부터 사냥능력이 뛰어나 해동청으로도 불렸던 참매는 꿩과 토끼 등 날짐승과 들짐승 사냥에도 쓰였다. 5월 상순경에 보통 3~4개의 알을 낳아 40일 가까이 품어서 새끼들이 태어나면 40일 가량 정성을 다해 키워 세상으로 내보낸다. 날아가는 먹이를 잘 낚아채 ‘바람의 사냥꾼’으로도 불리는 참매는 꿩과 멧비둘기, 직박구리 등 조류와 다람쥐와 청설모 같은 작은 포유류를 잡아 새끼를 키운다.
'참매 암수'
참매 부부가 모처럼 둥지에 함께 앉아 있다. 수컷이 암컷에 비해 깃털색이 조금 진하고 날렵해 보이지만 체격은 조금 작은 편이다. 알에서 부화하면 주로 암컷이 새끼들을 돌보고 수컷은 둥지 보수, 주변 경계와 먹이 사냥 등 바깥 활동을 주로 한다.

알에서 부화하면 주로 암컷이 새끼들을 돌보고 수컷은 둥지 보수, 주변 경계와 먹이 사냥 등 바깥 활동을 주로 한다.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먹잇감을 잡아 목은 날카로운 부리로 잘라내고 몸뚱이만 둥지에 저장해 두었다가 손질해서 먹인다.
참매 새끼가 성장해 둥지를 벗어나도 한동안은 어미 영역에서 생활하면서 사 사냥기술과 생존능력을 익힌다. 둥지를 완전히 떠났지만 1년이 안 된 참매 새끼를 '보라매'라 부른다.
생태사진가 김응성(70) 씨는 “최상위 포식자인 참매가 번식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목격되는 것은 다행스런 현상이다. 생태계가 그만큼 안정돼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생태사진가 용환국(60) 씨는 “강원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다니며 야생조류와 동물들을 수십년간 기록 중”이라며 “ 때론 힘도 들지만 우리의 자연 생태를 관찰하고 촬영하는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소중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춘천=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대기자, 용환국 생태사진가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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