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360조원을 투입해 줄기차게 저출생 대책을 마련해 왔음에도 출산율은 오르긴커녕 바닥을 모른 채 추락 중이다. 그럼에도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고 칭송받는 시대임에도, 축하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기 임신’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예비 한부모들은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한다. 오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을 앞두고 미혼모(비혼모)들의 삶을 조명해 우리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할 현실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
쿠키뉴스는 지난달 27, 28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비혼 엄마 두 명과 인터뷰했다.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낳기로 한 결심부터 홀로 부모 역할까지, 비혼 엄마의 삶 이야기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남자친구는 아이가 생김으로써 자신의 인생 계획이 틀어졌다고 생각했어요. 본인도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원하지 않는 시점에 아이가 찾아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죠.”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남자친구와의 이별, 다툼 과정에서의 스트레스, 임신에 대한 두려움, 부모의 책임감, 경제적 부담,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시선, 경력 단절 등은 출산을 결정해야 순간, 거대한 벽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출산에 대한 인식이 더 가혹했던 그 시절,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대박이(태명) 엄마 김미영(가명·46)씨와 복덩이 엄마 박소정(가명·51)씨의 이야기다.
김) 해외에 거주 중이던 남자친구가 한국에 들어와 결혼식까지 했어요. 이후 해외에 나가 잠시 살았는데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아이를 낳는 문제로 갈등이 시작됐고요. 미국과 한국에서 여러 차례 심리상담을 받았고 아주 아팠어요.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했죠. 30대 초반이었고, 출산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먼저 아이를 받아주셨고, 동생(아이의 이모)이 조카를 너무 예뻐했어요. 아이를 한 번 잃고 6~7개월가량 은둔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 “다시 날 찾아온 아이를 낳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죠.
박) 결혼을 약속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결혼 준비과정부터 순탄치가 않았어요. 나이가 어렸으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37세에 찾아온 아이였던 만큼 그대로 받아들였죠. “남자친구의 이런 모습을 감내하면서 무리하게 결혼해 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처음 가족들은 제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선택 잘했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건 상상한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미혼모가 된 이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양육비는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다. 직장도 집도 편하지 않았다. 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다해야 했기에, 화장실조차 마음 편히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엄마의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됐다.
김)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최근 일을 그만뒀어요.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어요. 소위 말하는 왕따였죠. 여자가 많은 조직이었는데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 몇몇 분은 뒤에서 이야기한 것 같았어요. 태도가 달라졌거든요. 몸은 힘든데 오전 7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후 7시에 하원해야 했어요. 아이가 어릴 땐 쓰레기를 밖에 혼자 버리러 나가기도 힘들었어요. 돌아보면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아이한테 풀었더라고요.
박) 대기업에 다니다 출산·육아휴직을 했고, 휴직이 끝날쯤 복직하지 않고 그대로 퇴사했어요. 회사 사람들은 제가 다 결혼한 줄 알았는데, 파혼하고 혼자 아이를 기른다는 게 부끄러웠거든요.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특히 심했어요. 흠이었죠. 먹고는 살아야 하니 별의별 일을 다 했어요. 애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니 마땅한 일이 없는 거예요. 보험 영업, 아파트 관리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생활비를 벌었죠. 현재 직장에는 얘기했어요. 저 혼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데, 혹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제가 가야 하니까요.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를 포기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한다. 갑자기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걱정은 영아 살해 위험을 키운다. 이들은 혼자도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수 있도록 지원이 이뤄지고, 주변의 지지만 있다면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원가정은 늘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비혼 엄마들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2세 때로, 아이가 울기만 하고 말이 통하지 않던 때라고 한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 고통스러웠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아이가 어릴 땐 먹고 살 걱정뿐이었다면, 아이가 자랄수록 적지 않은 교육비와 생활비 지출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는 혼자가 될 노후가 걱정이다. 정부 정책과 지원은 있지만, 현실과 괴리가 있다.
박) 영유아때는 감사하게도 분유·기저귀 지원을 받았어요. 아이가 크면 사실상 지원되는게 없어요. 아이가 중2가 되고 보니 학원을 가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더라고요. 주변에 친구들도 다 학원을 다녀서 아이가 혼자만 있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거죠. 학원비는 부담인데 아이는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하고, 나중에 ‘왜 나는 안해줬어’라는 말을 들을까봐 보내고 있어요. 정부에서 주는 문화바우처가 있지만 1년에 10만원 수준으로 책이나 문구류 사는 정도예요. 혼자 벌어 교육비에 생활비까지 쓰고 나면 남는 게 없죠.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어요. 살고 있는 매입임대 주택도 때가 되면 나가야 하는데, 이것만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요.
김) 한부모는 사실 평생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고 봐요. 정부에서 이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정신건강 상담)을 좀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릴 땐 그때만의 육아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떠나 빈 둥지가 됐을 때 고독사를 겪을까 봐 두렵다는 말을 많이 해요.
삶이 힘들어도 출산을 선택한 것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아이는 삶의 기쁨이었고 희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다. 임신을 알게 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십수년이 지난 현재, 이들은 출산·양육 결심의 기로에 서있었던 자신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김) 34살의 나에게 ‘아기는 늘 운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가 운다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다. 그리고 너는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힘들 땐 도움을 청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또 아이에게 마음을 더 썼어야 하는데 나의 상황에만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 미안하다고요. (남자친구와) 헤어지더라도 자신과 아이를 위해 시간을 많이 가지고, 미혼모일수록 혼자 더 많은 준비를 해두라고 전하고 싶어요.
박) 헤어진 후에 너무 힘들겠지만, 그 시절 아이의 예쁜 모습을 눈에 많이 담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잘못했던 부분들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작고 힘없는 아이한테 제가 소리를 지르곤 했거든요. 힘들어도 아이에게 화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혼모가 된 건 후회하지 않아요. ‘난 그냥 우리 복덩이의 엄마야’라고 생각해요. 엄마가 된 건 절대 후회하지 않죠.
인터뷰를 마친 대박이 엄마와 복덩이 엄마는 아이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이 사회에서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사랑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게 주고 싶어. 엄마가 힘들다는 이유로 너에게 잘못했던 부분은 미안하고 용서받고 싶어. 너에게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엄마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복덩이 엄마)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이렇게 만난 게 너무 감사해. 엄마한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대박이가 자라서 세상에 태어난 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 (대박이 엄마)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