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그런 걸 하면 안 되는 땅이었어”
지난달 20일 새만금잼버리전망대에서 만난 나영기(69)씨는 씁쓸한 눈으로 잼버리 야영장 부지를 바라봤다. 평생 군산에서 살았던 나씨는 지난해 열렸던 잼버리 행사를 언급하며 “세계적으로 다 망신을 당한 꼴”이라고 말했다. 나씨와 동행했던 이들도 나른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스카우터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25번째 대회가 지난해 8월1일 이곳 부안군 새만금 일대에서 성대하게 막을 올렸다. 4만3000여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새만금의 땅을 밟았다. 축제가 악몽으로 변한 건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회 내내 이어진 부실 운영과 새만금 일대에 내리쬔 폭염으로 행사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잼버리’란 이름은 곧 부실 행사의 전형으로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잼버리 야영장으로 사용됐던 부안군 하서면 일대에 들어서자, 숨이 턱 막힐듯한 더위가 느껴졌다. 전날 비가 내려 잔뜩 젖어버린 땅에선 끈끈한 습기가 내내 올라왔다. 배수로가 곳곳에 설치돼 있었음에도 야영지 부지는 흡사 갯벌처럼 군데군데 물이 고여있었다. 이곳은 향후 새만금개발청의 기본계획에 따라 ‘농업 용지’로 활용될 터였다.
지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는 부안군의 해창갯벌을 잼버리 대회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농지관리기금 1845억원을 투입해 매립하도록 지시했다. 기존 예산으로는 매립이 어려워지자 한국농어촌공사의 기금을 가져다 쓴 것이다. 새만금위원회는 기본계획을 고쳐 본래 관광레저용지였던 대회 부지 일대를 농업용지로 변경했다. 잼버리 대회 이후 민간사업자가 나타나면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지만, 대회가 졸속으로 끝나자 투자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병호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지난해 10월 “새만금 기본계획이 변경되기 전까지 농지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이곳 일대가 농업에 적합한 토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새만금전망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양순자(52·여)씨는 “땅에 짠 기가 있다. 나무 같은 걸 심어도 몇 년도 안 돼 금방 죽어버린다”고 지적했다. 부지 주변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최모(70)씨는 “그쪽은 함초 같은 것만 겨우 키우는 땅”이라고 말했다. 농촌진흥청도 홈페이지를 통해 “간척지는 토양에 염분이 있고 양분이 적어 농사를 짓기에 불리한 환경”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새만금개발청은 오는 2025년까지 새만금 기본계획 변경 용역 과업지시서에 잼버리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지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잼버리 부지의 중심에는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가 우두커니 자리했다. 리더센터 건물 곳곳에 있는 문은 모두 굳게 잠겨 있었다. 상주하는 관계자가 있을까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인기척은 들려오지 않았다. 태양광 패널 아래 넓게 마련된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전기차 충전기는 지금껏 사용된 적이 없는 듯 흙먼지가 짙게 쌓였다.
당초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는 스카우트 박물관, 야영장 등 부대시설에 교육과 숙박 시설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기획됐다. 잼버리 중에는 축제의 본부 역할을 맡고, 축제가 끝나면 잼버리를 기념하는 공간이자 청소년 수련원으로 활용될 계획이었다. 약 450억원을 들였지만 잼버리 행사가 끝나고 10개월이 지난 올해 6월에야 준공됐다. 시기를 맞추지 못한 탓에 기존 기획안도 모두 어그러졌다.
지난해 7월 제출된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 운영 기본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센터 운영을 위한 비용은 인건비와 관리비 등을 총합해 약 22억690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2019년 산업연구원은 연구 용역 보고서에서 센터의 이용 가동률이 50%가 넘어야만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리더센터를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되려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전북도는 연구 용역 등을 진행해 활용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계획 수립까진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12일 잼버리 대회 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해산했다고 밝혔다. 대회가 끝나고 11개월여만이다. 잼버리 유치부터 폐막까지 전 과정을 되짚어보는 백서도 오는 8월 중 발간된다. ‘부실 운영’으로 대회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잼버리 조직위는 마지막 해산 직전까지도 여러 구설수에 올랐다. 해산을 앞둔 상황에서 올해 약 17억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된 데다, 사무총장 등이 과도한 급여를 지급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 잼버리 사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해 빠르면 올해 하반기 감사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