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최서연(21·여·가명)씨는 소득 신고를 하지 않고 현금으로 임금을 받은 적이 있다. 이른바 ‘몰래바이트’다. 최씨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사는 청년 기초생활수급자다. 그는 몰래바이트를 위해 처음 보는 사업주에게도 자신이 기초생활수급자임을 밝혀야만 했다. 최씨가 자신의 집안 사정을 밝히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몰래바이트를 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씨가 몰래바이트를 하게 된 배경에는 ‘기초생활 보장제도 청년 근로·사업소득 공제 지원’ 제도가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기본적인 생계비를 의미하는 생계급여를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이때 국가는 가구별로 정해진 생계급여에서 수급자가 노동을 통해 얻은 수입(소득인정액)을 뺀 돈을 지급한다. 그러나 해당 제도에 따라 30세 미만 청년 기초생활수급자가 근로나 사업으로 얻은 소득 중 40만원은 소득 인정액으로 반영하지 않는다. 즉, 최씨의 수입 중 40만원까지는 생계급여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다.
해당 제도는 청년 수급자의 재산 형성을 돕는다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최씨에겐 아르바이트로 버는 한 달 소득을 40만원까지로 제한하는 족쇄가 됐다. 생계급여가 삭감되는 순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줄기 때문이다.
현재 최씨 가족의 수입은 총 216만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올해 기준 3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282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통신비, 관리비, 교통비 등 필수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약 25만원 정도의 돈만 남는다. 소액의 저축까지 하고 나면 최씨가 학교생활을 할 때 써야 할 돈은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씨는 학교생활에 필수적인 교통비와 식비를 제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씨는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40만원을 번다. 물가가 오르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비는 30만원, 교통비는 10만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외식비가 올랐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에 한 끼는 집 밖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평균 한 끼 식사비가 만원이 넘어가면서 이제 한 달 식비는 50만원에 달한다.
“예전에는 한 끼에 6000원 정도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한 끼에 1만원은 기본으로 하니까 더 힘드네요.” 최씨는 음식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도 ‘식비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음식점 알바는 대부분 그 식당 메뉴로 밥을 주는 경우가 많아서 식비를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식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고물가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최씨의 ‘족쇄’가 된 40만원 기준은 2017년 11월에 제정됐다. 2017년 당시 외식물가지수는 95.245(2020=100)로, 올해 외식물가지수 121.23과 비교했을 때 약 27% 증가했다. 또 외식물가는 2021년 6월부터 현재까지 전체 물가 평균 상승률 3.1%를 웃돌고 있다. 물가는 올랐지만 40만원 기준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대체 방안이 될 수 없는 몰래바이트
최씨는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한 이후인 2022년부터 40만원을 넘겨 벌 수 있는 ‘몰래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볼 때 사장님의 분위기를 살피는 것이 시작이었다. “사람 느낌이란 게 있어서 그래도 부탁을 들어줄 것 같은 분들한테만 여쭤봐요. 최대한 거절 당하지 않고 싶어서 제가 수급자인 것을 언급하면서 불쌍한 티를 많이 내려고 하죠.”
최씨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몰래바이트를 수락한 점주는 단 1명이었다. 이마저도 사장의 갑작스러운 당일 해고로 인해 40만원을 넘게 받은 달은 1달에 불과했다. 이후 최씨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해 몰래바이트를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최씨의 몰래바이트가 가능해지려면 사업주가 소득 신고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원천징수 신고불성실에 해당할 뿐 아니라 근로자 고용으로 인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고스란히 사업주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업주는 추후 불이익을 고려해 몰래바이트 요구를 거부하는 실상이다.
최씨는 아르바이트를 무작정 늘리지도 못한다. 몰래바이트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돈을 버는 것은 생계급여의 차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씨는 차선책으로 생활비 활용이 가능한 장학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씨가 받을 수 있는 생활비 활용 가능 장학금은 높은 성적 기준을 두고 있기에 매 학기 수급 여부가 불확실하다.
아르바이트 소득만으로는 식비도 온전히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기에 최씨는 장학금이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최씨는 매 학기 성적 기준을 맞추지 못할까 봐 학기 시작부터 성적 발표 전까지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결국 최 씨는 극도로 심해진 불안감에 지난 5월부터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있다. “방학 때나 그나마 좀 쉬는 것 같고…. 근데 시간표를 짜는 생각을 하면 방학 중에도 불안함이 가끔 올라오고 그래요.” 최 씨의 심리검사 진단표에는 불안, 우울, 분노, 피로 부분에서 모두 평균보다 높은 수치가 찍혀있었다.
“저는 엄청난 금액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생활비가 가능한 정도로 지금보다 10만원이나 20만원 정도 더 벌고 싶을 뿐이에요.” 최 씨가 바라는 것은 오직 제힘으로 벌 수 있는 몇십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