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조례를 잇달아 발의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탈모를 사회 질환으로 인정하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과, 특정 연령대와 질환에만 예산을 집중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대부터 30대까지의 탈모 환자 수는 11만4733명으로, 전체 탈모 환자 24만7382명의 약 46.3%를 차지한다. 탈모 발병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면서 지자체들이 탈모 지원 정책 및 관련 조례 제정을 확대하는 추세다.
6일 기준 전국 8곳의 지자체가 탈모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대구광역시와 충남 보령시, 서울 성동구는 2022년에, 부산 수영구와 경기 오산시는 2023년에, 부산 사하구, 경기 부천시, 서울 강서구는 2024년에 각각 조례를 제정했다.
이 중 서울 성동구는 탈모 치료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만 39세 이하 성동구 주민에게 경구용 치료 약제비의 본인 부담금 50%를, 1인당 연간 최대 20만원까지 지원한다.
충남 보령시는 만 49세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탈모 치료비를 지원한다. 신청년도 기준 2년 이내의 외래진료비 및 약제비 본인부담금에 대해 최대 200만원(생애 1회)을 보조한다
서울시도 지난해 3월 청년 탈모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했으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심사를 보류했다. 서울시 조례안은 서울시에 3개월 이상 거주한 19세 이상 39세 이하 탈모 청년을 대상으로 치료비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는다.
김철희 미래청년기획단장은 청년 세대만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세대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청년이 겪는 다양한 질환 중 탈모만을 지원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임만균 시의원과 서준오 시의원은 탈모가 심각해질 경우 청년의 자존감 저하와 정신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탈모로 고통받는 청년들은 정책을 반기고 있다. 대학교 4학년 이재훈(23·남·가명) 씨는 “최근 탈모 증상이 나타나면서 자신감이 크게 떨어졌다. 친구들이나 선후배와의 모임에서도 외모에 신경 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나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중구에 살고 있는 이씨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탈모 치료를 지원해 준다면,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중구에서도 지원해 준다면 치료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에 나설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하며 지원 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탈모 질환만 별도로 지원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의 지난해 외래환자 기준 다빈도 질병 통계에 따르면, 탈모 질환에 해당하는 질병코드 4개가 모두 20~30대 다빈도 질병 순위 100위 밖으로 집계됐다.
반면,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 관련 질환과 지루성 피부염, 아토피 피부염, 여드름 등 피부질환은 탈모보다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탈모 질환만을 별도로 지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성호 동아대학교 가정의학과 교수는 “더 시급한 피부질환과 같은 질환이나 청년들에게 급한 다른 안건이 많은데 탈모만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피부암이나 건선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청년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일부 지역에서만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며 탈모 지원 정책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