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약자가 서울시 내 무장애숲길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과 노인 등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숲을 즐길 수 있게 길을 넓고 평평하게 만든 등산로다. 주로 나무 덱을 이용해서 바닥을 고르게 만들고 경사를 완만하게 한다.
2일 기준 서울시에는 총 34개의 무장애숲길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09년 ‘서울시 근교산 자락길 조성계획’을 수립,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숲길 조성을 계획했다. 이후 2011년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숲길을 시작으로 서울시내 전역에 무장애숲길을 만들었다. 최근 2~3년 사이에는 각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무장애숲길을 조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숲길은 산림 문화와 이동 약자 편의에 관련된 법률을 기반으로 한 ‘서울시 무장애숲길 매뉴얼’에 따라 조성한다. 매뉴얼에는 조성계획·설계·시공 전반에 적용하는 통일된 기준과 표준모델을 담았다.
정책 확대에도 불구하고 실제 무장애숲길을 이용하는 보행 약자들 사이에서는 숲길에 접근하기도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가 개최한 ‘지속 가능한 도시공원을 위한 서울의 무장애숲길 조성 관리방향 토론회’(이하 토론회)에서는 휠체어 사용자가 다니기 어려운 무장애숲길의 실태가 논의됐다. 토론회에서는 △숲길 입구 접근 인프라 부족 △숲길 내 단차 존재 △숲길 내 편의시설(쉼터, 화장실 등) 설치 미비 등 숲길 이용과정 전반에 걸친 문제점이 언급됐다.
이러한 문제는 이용자 편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무장애숲길 설치 기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이윤주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현재 서울시 무장애숲길의 문제점은 적절한 설치 기준의 부재”라며 “폭과 기울기(경사도)를 제외한 다양한 배리어프리 장치들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시 무장애숲길 매뉴얼에 따르면 무장애숲길 내 보행 약자 편의시설 설치는 필수 항목이 아닌 ‘권장’ 항목으로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보행약자 편의시설 중 하나인 장애인 화장실은 무장애숲길 총 34개소 중 28개소에 설치돼 일부 숲길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
또한 무장애숲길이 설치되기에 적절한 장소인지를 판단하는 ‘노선타당성평가’ 항목 중 ‘접근성’ 평가 기준은 장애인 주차장·대중교통과 숲길 진·출입로 간 연결성으로 규정돼 있다. 휠체어 단독으로 숲길 입구에 접근할 수 있는지는 숲길 설치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 무장애숲길은 어떨까. 지난 9월14일부터 같은 달 18일까지 서울시 무장애숲길 세 곳을 수동휠체어와 전동휠체어로 직접 다녀왔다.
숲길 입구까지 가파른 경사로… 휠체어 혼자서는 접근 불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봉산 무장애숲길은 입구부터 휠체어로 접근하기 힘들었다. 숲길 입구까지 가파른 경사로가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이다. 휠체어 바퀴를 굴려 올라가려 했으나, 몸이 계속 뒤로 쏠렸다.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입구로 올라가기가 불가능하다.
차도와 구분된 인도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차도의 양 끝은 주차된 차량으로 채워졌다. 휠체어로 언덕을 오르기 위해서는 통행하는 차량과 정면으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울퉁불퉁’ 시멘트 흙길… 곳곳 턱도 존재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안산 무장애숲길은 나무 덱으로 마감하지 않은 바닥이 넓었다. 마감 소재가 나무 덱이 아니더라도 바닥이 고르면 상관없지만, 중간중간 경화토와 흙으로 마감된 길을 지날 때면 휠체어가 심하게 흔들렸다.
특히 경화토길과 나무 덱을 잇는 부분에 단차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앞바퀴가 단차에 걸려 휠체어가 나가지 못했다. 결국 지나가는 시민의 도움으로 앞바퀴를 완전히 들어 나무 덱이 깔린 길에 진입할 수 있었다.
가파른 경사와 높은 턱을 넘어가기에 비교적 수월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면 상황이 좀 달라질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전동휠체어 사용자 조서연(25·여)씨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우면산 무장애숲길을 동행했다. 조씨의 전동휠체어는 수동휠체어로는 올라가기 어려운 경사도도 잘 통과하고, 중간에 설치된 턱도 잘 넘어갔다.
그러나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여닫이문으로 밀고 들어가야 하는 장애인 화장실은 동행자가 문을 밀어주지 않으면 들어가기조차 어려웠다. 화장실 칸으로 들어간 후에도 조씨는 한참 동안 휠체어의 위치를 조정해야 했다. 용변기 옆 휠체어를 놓는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조씨는 “휠체어를 용변기 옆에 둬야 혼자서 (용변기로) 옮겨 앉기가 수월하다”며 “이 화장실의 용변기 옆은 공간이 좁아 휠체어를 놓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