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고 성장 ‘뚝’…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재점화

물가 오르고 성장 ‘뚝’…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재점화

기사승인 2025-03-07 06:05:05
한 남성이 서울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사진=최은희 기자

고환율과 유가 상승으로 인해 생활 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개월 연속 2%대 오름세를 기록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와 국내 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 우려까지 나온다.

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했다. 1월(2.2%)에 이어 두 달 연속 2%대 상승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9월 1.6%, 10월 1.3%, 11월 1.5%, 12월 1.9%로 점진적인 오름세를 보이다 올해 2%대에 진입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고환율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며 2%대로 올라섰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오른 주요 원인으로는 유가·환율 상승이 꼽힌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후반까지 치솟았다. 이는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20년 수준 100)는 145.22다. 지난해 12월보다 2.3% 올랐다. 지난 10월 2.1% 상승한 이후 4개월 연속으로 오름세를 보였다. 유가나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은 소비재 가격 상승을 통해 즉각적으로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중간재, 자본재 등의 수입물가 상승 역시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더디다.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은 암울한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을 보여준다. 지난해 국내 경제성장률은 2%에 그쳤다. 4분기 성장률은 전망치 0.5%를 크게 밑돈 0.1%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은 더욱 어둡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11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에서 1.6%로 낮췄다. 한은도 지난달 25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대폭 내려 잡았다. JP모건, 씨티, 골드만삭스, UBS 등 해외 투자은행(IB)의 예측 수치도 1.2~1.9%로 비관적이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커지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저성장의 늪

일각에선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은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 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을 합친 용어다. 통상적으로 경기가 호황일 경우 실업자 수는 감소하고 물가가 상승한다. 반대로 불황일 경우 물가 상승 속도가 늦춰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이같은 상식에서 벗어난,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진입하면, 시장의 불확실성과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이 소비를 제한한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은 고용과 투자를 줄인다. 그 결과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또 다시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소비와 고용이 타격을 받으면 성장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시장과 산업이 경직돼 저성장의 늪에 갇히는 상태가 된다. 한국은 이미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을 체감한 나라다. 1975년 소비자 물가는 전년 대비 24.7% 상승했고, 국제수지는 18억9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서민들의 삶도 그만큼 팍팍해졌다.

양준모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11~12월 수입물가가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급등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이됐다”며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경제활동 인구 감소로 경제 성장까지 둔화되면서 소상공인 등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물가는 오르고 경기는 좋지 않은 현상이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엎친데 덮친 트럼프 리스크…추경 목소리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관세 정책도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론에 힘을 싣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일(현지시간) 자정부터 모든 캐나다와 멕시코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적용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한 에너지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상대국들은 즉각 보복관세를 예고했다. 시장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의 성장률을 낮추고 물가를 끌어 올릴 것으로 우려한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을 특정해 거론했다. 우방국,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가리지 않고 관세전쟁 타깃으로 삼고 있는 만큼, 한국에게도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크다.

이미 내수부진과 경기침체에 시달리는 한국으로선 ‘트럼프 리스크’가 큰 부담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관세전쟁 등 무역환경 변화는 악재가 될 전망이다. 특히 한국 주력 산업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와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8%, 10.4%다. 15대 수출 품목 중 1·2위 비중을 차지한다. 석유류와 원재료 가격 상승에 관세 조치까지 더해지면, 수출 타격으로 경제 성장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우리나라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자동차까지 관세가 부과되고 통상 갈등이 격화한다면 성장률 전망치가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추경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추진하는 예산을 조기에 당겨쓰는 것만으로는 ‘트럼프 리스크’ 등 정치 불확실성과 내수 침체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예산 조기 집행이 하반기 경제성장의 하방 요인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5일 추경에 대해 “15조~20조 정도로, 시기는 가급적 빨랐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교수도 “사실상 거시경제 사령탑인 한국은행이 추경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았나”라며 ”추경을 하는 게 맞는 방향이다. 지금이라도 협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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