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수품목 관련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 불공정거래 관행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가맹사업법을 개정했다. 다만 가맹본부가 가맹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물품까지 점주들에게 강제로 구매하게 하는 등 불공정거래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모양새다.
27일 현재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가맹본부의 과도한 필수품목 지정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게재돼 있다. 김밥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운영한다고 밝힌 A씨는 “인터넷에서도 구할 수 있는 기성품을 필수품목으로 지정해 비싸게 팔며 가맹본부는 이윤을 남긴다”면서 “가격 인상까지 유예기간 없이 통보하자마자 바로 올려버리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시중에서 물품을 더욱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데도 점주들은 가맹본부를 거쳐야 해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수품목은 가맹본부가 브랜드의 동일성 유지 등을 위해 반드시 본부가 지정한 사업자로부터만 구매하도록 강제한 품목이다. 필수품목 지정 관련 제도는 2002년 가맹사업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다수의 가맹본부가 지나치게 많은 품목을 필수품목으로 지정하거나, 가격 산정 방식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 불공정거래 관행은 계속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가맹사업법을 개정해 필수품목의 종류와 공급가격 산정방식을 가맹계약서에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하지만 개정된 가맹사업법이 시행된 지 8개월이 흐른 지금도 점주들의 피해는 이어지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필수품목 강제구매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본부에 가한 제재는 3월 한 달만 해도 총 2건이다. ‘던킨도너츠’ 가맹본부 비알코리아와 ‘족발야시장’ 가맹본부 올에프앤비가 그 대상이다.
지난 13일 공정위는 주방설비, 소모품 등 38개 품목을 가맹본부로부터만 구입하도록 강제한 비알코리아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해당 품목이 던킨도너츠의 맛과 품질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7일에는 올에프앤비 또한 시중에서 대체상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포장용기 13종을 지정된 사업자에게만 구매하도록 강제해 공정위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특히 올에프앤비는 점주가 포장용기를 개별적으로 구매할 경우, 상품 공급을 중단하거나 가맹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가맹계약에 포함하기도 했다.
이처럼 필수품목을 둘러싼 불공정거래 중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원부자재 관련 항목이다. 이는 가맹본부가 차액가맹금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다. ‘숨은 로열티’라고도 불리는 차액가맹금은 가맹본부가 가맹점에 상품·원재료·설비 등을 공급할 때, 적정 도매가격을 초과한 가격을 책정해 얻는 수익을 말한다.
차유미 한신대 연구교수는 “대부분의 가맹본부는 차액가맹금과 같은 유통마진으로 이익을 거두고 있다”며 “가맹사업법 개정으로 일부 시정이 되긴 했지만, 필수품목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고 차액가맹금이 총액과 비율로만 적시돼 있다. 점주들은 여전히 어떤 품목에 얼마만큼의 차액가맹금이 포함돼 있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 당국이 법 위반 사항을 일일이 적발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맹본부와 가맹점주협의회가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면서 “공정한 협상력을 위해 관련 제도를 강화하는 한편, 법 개정에 앞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개선책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