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벤져스2 몰아주기?’…영화 흥행 결정, 정말 관객이 하고 있을까

[기획] ‘어벤져스2 몰아주기?’…영화 흥행 결정, 정말 관객이 하고 있을까

기사승인 2015-05-09 05:00:55
사진=영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포스터

신기한 초능력과 초월적인 기술력으로 무장한 슈퍼 히어로들이 한데 모여 악당과 싸운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스케일 큰 액션 신은 관객들을 열광케 하기 충분하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외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8일 오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어벤져스2’는 지난 7일 하루 전국 1307개 스크린에서 10만6320명을 동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누적관객수만 857만2456명에 달한다. 이번 주말 극장가를 찾을 사람들을 예상한다면 관객 900만을 넘어 1000만 고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대단한 스코어는 예상된 수순이었다. 성공적인 전작과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상으로 인해 대중의 ‘어벤져스2’를 향한 기대감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구심은 남는다. 같은 날 영화 ‘차이나타운’은 487개 스크린에서 4만3272명(누적관객수 95만1265명)을 동원했고 영화 ‘언프렌디드:친구삭제’는 개봉 첫날 297개 스크린에서 2만1881명(누적관객수 2만2095명)을 불러 모아 각각 박스오피스 2, 3위를 기록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스크린 수다. ‘차이나타운’과 ‘언프렌디드:친구삭제’가 상영되는 스크린을 합쳐도 ‘어벤져스2’와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우리나라 스크린은 2281개다. ‘어벤져스2’가 개봉일 당시 1731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것을 볼 때 ‘독식’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다.

‘어벤져스2’가 전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시리즈 영화임을 감안,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인정한다 해도 선뜻 이해하긴 힘들다. 복수의 영화를 한 장소에서 동시 상영하는 ‘멀티플렉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9일 기준, 서울에 위치한 대형 멀티플렉스 CGV, 롯데 시네마, 메가박스에서 박스오피스 1~3위를 기록한 ‘어벤져스2’ ‘차이나타운’ ‘언프렌디드:친구삭제’의 상영횟수를 조사해봤다.

CGV는 26개의 영화관에서 ‘어벤져스2’를 총 655회 상영한다. ‘차이나타운’은 253회, ‘언프렌디드:친구삭제’는 81회 그쳤다. 이중 CGV 영등포점은 이날 ‘어벤져스2’를 무려 50회 상영한다.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하다. 롯데시네마는 21개의 상영관에서 ‘어벤져스2’ 416회, ‘차이나타운’ 132회, ‘언프렌디드:친구삭제’ 38회 상영한다. ‘차이나타운’과 ‘언프렌디드:친구삭제’를 아예 볼 수 없는 곳도 있다.

메가박스는 서울 시내 12개의 상영관 중 자동차극장과 예술영화관을 제외한 10개의 극장을 조사한 결과 ‘어벤져스2’ 270회, ‘차이나타운’ 83회, ‘언프렌디드:친구삭제’ 45회 상영한다.

세 멀티플렉스에는 현재 개봉 중인 다른 영화 ‘연애의 맛’ ‘기생수 파트2’ ‘위험한 상견례2’ ‘다이노타임’을 찾아볼 수 없는 극장도 많으며 상영한다 해도 조조나 심야시간대에 몰려 있었다.

이쯤 되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스크린 독점에 앞장서고 있으며 대중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문제점은 이뿐만 아니다. 일부 대기업을 위한 영화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 또한 일고 있기 때문이다. CJ, 롯데 등이 장악하고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그동안 자사 배급 영화를 위해 스크린을 장악하고 중소 배급사의 상영관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CJ E&M이 투자 배급한 영화 ‘국제시장’ ‘쎄시봉’ ‘명량’ ‘광해’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이 이 같은 논란에 자유롭지 못했으며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돈의 맛’ ‘음치 클리닉’ 역시 계열사 영화 밀어주기로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중소배급사의 처지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제작자 엄용훈(48) 전 리틀빅픽쳐스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기업 수직계열화 문제를 비판하는 호소문을 쓰기도 했다.

엄 전 대표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지난해 언론 및 시사회 관객의 높은 호평에 기대를 안고 개봉했지만, 개봉 첫 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 수준에 크게 못 미치는 개봉관만을 확보했다”며 “그 다음 주부터는 조조 시간대와 심야시간대가 주를 이루는 상영시간을 배정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영화산업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가 돼버린 상영관 구조에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의 양이 수요를 결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애초 관객의 영화선택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영화를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구축된 멀티플렉스라는 시스템이 힘없는 영화와 중소 영화사를 사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병폐를 타파할 방법은 없을까? 미국은 ‘파라마운트 판결’로 영화산업의 수직적 통합을 제어했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영화사 ‘파라마운트’와 타 메이저 영화사에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을 수직적으로 통합한 것은 독점 금지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 판결을 5개 메이저 영화사와 3개 마이너 영화사에 반영, 극장 소유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파라마운트 판결’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이해집단의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9일 서울 CGV 여의도에서 열린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에서 CJ CGV 측은 “편성은 철저히 관객의 수요를 쫓아간다”며 “개봉과 관련해 유사 작품 3편의 흥행 실적, 영화 내용, 계절 수요, 경쟁작 상황, 사전 예매, 관객 조사, 시사회 후 반응 등을 고려해 예상 관객 수를 내놓고 편성 전략을 짠다. 배급할 때는 효율적인 측면을 우선시한다. 스크린 숫자로 관객이 움직이진 않는다. 흥행 여부는 콘텐츠 중심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찜찜한 상황에 대형 배급사와 멀티플렉스를 소유하고 있는 대기업의 이 같은 목소리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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